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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29집 제2호
발행연도
1995.12
수록면
375 - 40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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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는 19세기 말 조선 유교 권력과 서구 제국주의에 대응한 대안적 사상과 운동으로 동학을 창도했다. 수운이 1864년 조선 정부에 의하여 좌도난정률로 대구에서 처형되자 해월 최시형이 그 뒤를 이었다. 해월은 동학을 민의 생활양식으로, 포접(包接) 조직으로, 민(民)의 집회(集會)라는 정치 세력으로 성장시켰다. 왜의 침략적 속성이 더욱 노골화되던 1890년에 이르면 해월은 일련의 대중 집회를 주도하고 1893년에는 3만 명이 넘는 변혁지향적인 민이 보은에 모이면서 동학은 안으로는 조직화, 체계화를 이루고 밖으로는 왜의 침략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이 점에서 동학은 한국적 근대성의 지평을 연 사상적, 운동적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서구 근대성의 특성이 휴머니즘적 합리주의에 있다면 동학의 특징은 네오휴머니즘적 직관주의, 또는 영적 합리주의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 이 글의 문제의식이다.
네오휴머니즘은 자연, 인간, 신(天地人) 안에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통일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인간 본질과 목적은 인간 뿐만 아니라 자연사물의 심연에 내재한 우주적 통일성 또는 영적 통일성을 구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동학에서 인간 본성(性)은 우주 법칙(天理)과 우주 기운(天氣)에 합한다는 점에서 합리성이다. 서구 철학에서 사용하는 합리주의와 구분하기 위하여 동학의 합리성을 영적 합리성, 직관적 합리성, 네오휴머니즘적 합리성으로 부른다. 동학은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네오휴머니즘적 합리성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동학의 네오휴머니즘 정치철학을 동학의 핵심 논리인 불연기연(不然其然), 시천주(侍天主) 주문의 내용, 구체적 실현 전략인 삼경(三敬)과 이천식천(以天食天), 이상의 현실태인 향아설위(向我設位)와 후천개벽(後天開闢)의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보았다.
휴머니즘이 자연을 정복하고 바이성적인 전통과 지역을 이성적인 근대성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는 인간중심주의이고 침략주의적인데 반하여 네오휴머니즘은 자연과 인간은 네트워크적 순환 관계 속에서 서로 의존하며(物吾同胞) 모든 지역과 문화적 차이의 저변에는 직관적 통일성이 있다는(人吾同胞) 우주적 가족 관계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인간과 인간은 협동으로 진보하며, 인간과 자연 사물을 포함한 동식물은 서로 연대하면서 발전한다고 본다. 동학은 인간 중심적 사회가 아닌 보다 보편적인 우주적 사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동학은 이성(理性)을 사유하고, 노동하고, 정치하는 주관들(개인, 계급, 국가 등)에 귀속시키지 아니하고 우주 법칙(天命)으로 이해하고 이를 충실히 따르는 삶이야말로 생명 가치를 실현하고, 인간 가치를 우선시하고, 보편적 우주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면적 혁신은 오직 인간 완성의 맥락에서만 그 의미를 가진다. 인간 완성과 사회구조적 혁명이 균형적으로 완성된 사회를 후천개벽 사회라 할 수 있다.
동학은 19세기 말 조선사회의 대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짓 문화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도덕과 윤리의 타락, 착취와 억압으로 인한 인간과 사회의 위기, 핵무기와 자연 파괴로 인한 생명자체의 소멸 위기의 현대 사회에 오히려 그 존재 의의가 높다 하겠다.

목차

논문요약
Ⅰ. 머리말
Ⅱ.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논리
Ⅲ. 시천주(侍天主)의 철학 구조
Ⅳ. 네오휴머니즘의 정치철학 : 삼경(三敬)과 보편적 공공성
Ⅴ. 네오휴머니즘의 현실화 : 향아설위(向我設位)와 후천개벽(後天開闢)
Ⅵ.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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