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경제연구학회 한국경제연구 한국경제연구 제12권
발행연도
2004.6
수록면
139 - 175 (3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910년 식민지화 이후 한국 농촌사회는 일본 경제권 내에서 식량공급지로 위치지어지고, 농업생산력의 급상승과 농민궁핍화의 심화라는 상호 모순되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식민지지주제하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그간의 연구자들이 식민지지주제에 관선을 집중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글은 개항장 군산의 배후 농촌지대인 익산군을 사례대상으로 하여 총독부의 농업정책이 식민지지주제에 가한 영향력을 토지대장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려는 것이다. 사례의 대상인 익산군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춘포면은 한국의 최대곡창지 대인 전북 평야부 도작지대에 속한다. 익산지역은 1899년 군산의 개항 이후 일본 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철도 및 도로의 건설, 시가지의 조성 등 급속한 개발 붐(boom)을 타게 되었다. 1910년에는 全益水利組合이 설치되고, 1920년대 중반부터는 萬頃江改修工事가 장기간의 산업정책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개발적 요소는 이 일대의 농업환경을 크게 개선시켰다. 경지의 질적 상태가 호전되어 미곡생산량이 급증하고 , 경지의 분할이 가속화하면서 보다 집약 적 농업을 위한 호조간을 제공하였다. 그리나 한편으로는 지역 내 조선인 토지소유자의 토지상설이 진행되면서 일본인 중심의 식민지지주재는 더욱 발전하였다. 1930년대 선반 농업공황을 즈음해 지주제는 일정한 부침을 겪으며 정체상태를 보였지만, 토지소유집중도라는 지표로 보는 한 지주재의 추이는 높은 수준에서 감소하지 않은 채 한국의 지배적인 생산관계로서 견고하게 존속하고 있었다.

목차

초록

Ⅰ.문제의식

Ⅱ.익산군과 춘포면의 개발

Ⅲ.경지상태의 변동

Ⅳ.식민지지주제의 추이(1914~1945)

Ⅴ.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320-01425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