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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임정운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김택민
발행연도
2022
저작권
고려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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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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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545년부터 630년까지, 격변의 시기의 중국에 가장 위협적이었던 돌궐을 어떻게 방어하였는가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돌궐은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을 갖춘 유목 제국이어서 동쪽과 서쪽에 여러 개의 거대한 세력을 이루었는데 본 논문에서는 직접적으로 중원왕조와 적극적 외교 관계를 맺은 대가한을 중심으로 중원왕조와 돌궐1제국과의 관계를 서술하였다. 돌궐이 중국 사료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이 545년이며 이후 80년 동안 중원왕조의 적국으로 군림하였다. 돌궐이 흥기할 당시 북중국은 분열 상태였기에 군사력이 막강한 돌궐을 군사적으로 방어할 수 없었다. 이에 북중국의 서위?북주 그리고 동위?북제는 막대한 물자를 돌궐에 제공함으로써 돌궐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막았다. 돌궐 역시 북주와 북제의 갈등 상황을 십분 활용하여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고 둘 사이를 끊임없이 저울질 하였다.
그런데 수가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면서 상황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또 돌궐 지도층에 내분이 발생하였는데 수문제는 이러한 돌궐의 변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가한들 사이의 분열을 꾀하였다. 이 때 돌궐 대책에 대단한 활약을 한 사람은 돌궐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던 장손성이었다. 그는 돌궐 내부 사정을 완전히 간파하여 때에 따라 적절한 대책을 내어 놓았으며 또 이것이 성공을 거두어 돌궐 가한들 중 한명인 계민가한을 수의 세력권 내에 두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중원왕조의 돌궐의 관계는 잠시나마 진정 국면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수양제가 즉위한 후 무리한 대외정책을 펼침으로 수는 혼란한 국면에 빠지게 되었고 돌궐은 이 기회를 틈타 다시금 중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하였다. 이후 당 건국 초기까지 돌궐은 끊임없이 중국 영토를 침략하여 중국을 위협하였다. 그런데 627년 돌궐에게 극심한 자연재해가 일어나 돌궐의 경제 상황이 매우 심각한 상태가 되어 돌궐 내부에 큰 혼란이 일게 되었다. 당태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돌궐을 공격하였으며 630년 돌궐의 힐리가한을 생포하는데 성공함으로써 80년 동안 지속되었던 외교 관계가 종결을 맺게 되었다.
돌궐1제국 시기 동안 중국은 무려 왕조가 3번 바뀌었고 이 격변의 시기에 중국에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는 돌궐이었다. 따라서 중국은 돌궐에 대한 대책과 전략을 지속적으로 수립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돌궐 역시 그들 나름의 전술이 있었는데 중국과 돌궐의 관계는 이러한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하며 전개되었다. 또한 중국의 왕조가 바뀔 때마다 양국의 외교 노선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기존의 학계에서는 중원왕조와 돌궐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돌궐이 어떻게 ‘중국 중심적 질서 체계’에 편입하였는가에 주로 중점을 맞추었다. 이에 본 논문은 사료에 나와 있는 돌궐 관련 기사의 대부분을 망라하여 중국과 돌궐1제국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구현해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545년부터 630년까지 80여 년 동안 중국과 돌궐의 관계가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때에는 계민가한이 수의 국경 안에 들어와 있을 때뿐으로 그 이외의 기간은 돌궐이 중국을 위협하고 중국은 재물로써 이를 무마하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630년에 결국 돌궐이 항복을 하긴 하였으나 돌궐의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은 627년경부터이며 이전까지는 당은 항상 돌궐로 인하여 곤란에 빠졌다. 이러한 양상으로 볼 때 중국과 돌궐의 관계를 논할 때 많이 나오는 ‘중국 중심 질서 체계로의 편입’이란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 일단 당에 대한 돌궐의 태도를 보면 돌궐은 오로지 중국의 재물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중국 중심의 질서’에 대하여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돌궐1제국 시기의 중국은 여러 번 교체되는 왕조로 인하여 국내 질서를 바로잡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수양제가 ‘중국 중심의 질서 체계’를 구축하고자 시도는 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수는 패망하고 중국은 대혼란에 빠지게 되었음을 주지해야 한다. 중국과 돌궐1제국의 관계는 돌궐은 공격하고 중국은 방어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즉 이 둘은 ‘공수관계’였음을 증명하는 것이 본 논문의 주제이다.

목차

서론 1
1장. 突厥의 성장과 西魏~北周?東魏~北齊(545~581)와의 관계 13
I. 突厥의 흥기와 중원왕조의 판세 변화 14
1. 突厥의 등장 이전 북중국 형세 14
2. 西魏?突厥의 和親과 柔然의 滅亡 20
3. 突厥 木杆可汗의 세력 확장 26
II. 北周?北齊의 갈등에 의한 突厥의 以華制華 29
1. 564년 北周와 北齊의 전쟁 29
2. 北周?北齊?突厥의 三角關係 35
III. 北齊의 滅亡과 突厥의 北齊 부흥 원조 39
Ⅳ. 소결 45
2장. 隋(581~617)와 突厥의 관계 양상 47
I. 隋 文帝(581~603) 時期 突厥政策 47
1. 沙鉢略可汗의 공격과 長孫晟의 돌궐 방어 대책 47
2. 隋의 突厥 가한 이간책 68
3. 突厥 ?民可汗 회유 74
4. 소결 81
II. 隋 煬帝 時期(604~617) 중국의 형세와 突厥 83
1. 隋 煬帝의 對外政策과 突厥 83
1) 煬帝의 北邊 巡行과 ?民可汗 83
2) 裴矩의 西突厥 정책 92
3) 煬帝의 高句麗 원정의 실패에 따른 상황 변화 99
2. 隋末 群雄割據 시기의 突厥 103
1) 始畢可汗의 ?門 포위 103
2) 群雄割據 세력과 突厥의 연계 106
3. 소결 111
3장. 唐初(618~630) 突厥 정책과 突厥 붕괴 113
I. 唐 건국 직후 突厥의 위협 113
II. 高祖의 突厥 견제 정책 121
1. 突厥의 지속적인 변경 침입 121
2. 突厥에 대한 離間策 시도 129
III. 太宗의 突厥 계책과 突厥 붕괴 134
1. ?利可汗 沒落의 시작 134
2. 突厥 내부 세력 분열과 붕괴 140
Ⅳ. 소결 144
결론 146
참고문헌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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