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난 한국은 공고한 민주적 정부 제도에 따라 공공정책의 형성과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의 이해는 여전히 단순한 틀에서 분석되고 있는데, 특히 한국 정부 제도의 독특한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에 대한 분석은 권위주의의 유산으로서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 관료의 입법 활동을 통한 정책형성 및 의회의 수용을 통한 결정 과정이 지니는 역동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입법부-행정부 상호작용에 따른 권한위임의 풍부한 이론들을 통해 분석한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권한위임의 요청’으로서의 행정부 법안을 작성하는 전문적 관료와 법안의 실질적인 결정 지점인 상임위원회에 초점을 맞추고, 어떠한 요인이 행정부 법안을 수용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한다. 한국 국회에 제출된 행정부 법안에 대하여 관료 조직 및 상임위원회 요인을 포함한 다층 구조 자료를 구성한 후 이를 다층 조각지수 위험 모형으로 분석한 결과, 관료의 전문성과 상임위원회의 관심 및 역량, 정치적 구조에 따른 갈등이 행정부 법안의 최종적인 통과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하였고, 행정부 법안에 담긴 풍부한 정보는 상임위원회가 이러한 정보를 추출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확인하였다.

구체적으로, 관료 조직은 특정한 정책 영역을 담당하는 행정 기관일 때, 전문성을 지니고 임기를 보장받는 고위공무원단의 조직 내 비중이 클 때, 그리고 정보 수집에 필요한 풍부한 가용 예산을 지니고 있을 때 그들이 작성한 법안의 의회 통과 가능성이 크게 나타남으로써 의회가 이를 수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행정부 법안을 심의하는 상임위원회가 집합적 의사결정 지점인 의회에서의 정책 균형 달성을 위해 더 많이 활동할 때, 그리고 본회의에 행정부 법안이 통과되어야 할 이유로서의 심사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여 신호를 보낼 때 행정부 법안은 최종적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상임위원회가 법안 생산 및 정부 예산에 대한 심사를 위해 더 많이 활동할 때, 그리고 상임위원회 내부의 전문적 공무원을 통해 행정부 법안이 통과되지 말아야 할 이유로서 구체적인 기술적 검토가 제시될 때 행정부 법안이 최종적으로 통과될 가능성은 작게 나타남으로써 의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다. 다른 맥락에서, 상임위원회는 관료보다 정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으로 인하여 행정부 법안에 담긴 정책 정보가 풍부할수록 이를 자신들의 법안에 담는 정보 추출 행위로서의 대안반영을 통해 수용할 가능성이 크게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참여하는 정치인들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구조의 정치 및 정치적 주인의 다른 문제로 인하여,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의 정당이 일치하지 않고 정치적 갈등이 커지는 분점정부 시기에 의회는 관료에게 정책 결정 권한을 떠맡기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행정부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크게 나타났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민주적 정부 제도가 자리잡힌 한국에서 정책형성과 결정에 대한 상호작용이 복잡하고 역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행정부 법안의 결정 과정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즉, 한국의 공공정책 형성 및 결정 과정은 단순한 틀에서 분석될 수 없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관료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분석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수단으로서 관료 입법이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정부 제도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제도적 행위자들의 특성 및 상호작용에 대한 엄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