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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이병춘 (부산대학교, 부산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이호열
발행연도
2019
저작권
부산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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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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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상징과 구조적 개념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공포가 형성되던 초기에는 상징의 의미가 더 중시되었으며, 점차 목구조가 자리를 잡으면서 공포는 구조적 체계로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첨차형식인 3소로첨차(一斗三升)가 정립되고, 이후 살미첨차에서는 중공조로 전개된다. 공포가 구조체계로 전개되면서 형성과정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상징은 규범과 통일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공포의 전개과정 이면에는 남방과 북방이라는 지역성이 반영되었다.
전각부(轉角部)에 위치한 귀포는 주상포보다 상부의 하중을 더 많이 받는다. 따라서 각국에서는 전통적 기법을 바탕으로 귀포를 구성하는 귀주살미와 귀살미, 좌우대를 효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귀포의 구조적인 해결을 모색하여 왔다.
귀포의 결구방식을 보면, 북방지역에서는 주상살미와 좌우대가 중심이 된 반면, 남방지역에서는 귀살미가 구조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런 차이점은 이후 북위의 낙양천도와 수의 통일로 남방계와 북방계의 건축문화가 융합되고, 唐代에는 공포가 체계화됨으로써 귀살미와 귀주살미, 좌우대가 모두 결구 되는 방식으로 통합되었다.
중국 唐宋代 귀포를 고찰한바 요대에 귀포의 변화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요대의 귀포 변화는 사공의 한 종류라 할 수 있는 귀잡이첨차 및 익형공과 관련이 있다. 귀잡이첨차와 익형공은 요대 건축에서 적극 채용되었는데, 투심조를 유지하던 외1출목에 계심조가 전개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이것은 북방지역에 위치한 요가 무앙계를 주로 사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같은 귀포의 전개과정은 크게 초기형과 과도기형, 그리고 정형으로 구분된다. 초기형은 첨차를 구성하는 기본원칙인 중공조(重?造)와 3소로첨차(一斗三升)의 규칙이 귀포에서도 잘 유지되는 형식이다. 정형은 각 출목에서 좌우대가 돌출하여 상부의 좌우대를 받음으로써 출목의 구성이 정연해진 형식이다. 귀포에 졍형이 형성되면서 형식적인 통일성을 이루지만 좌우대에서 그동안 중시되었던 중공조와 3소로첨차의 규칙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무량수전 귀포와 관련하여 주목할 형식은 과도기형이다. 과도기형은 대략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외1출목좌우대와 귀살미가 결구 되는 양상에 따라 무뺄목형과 사두뺄목형, 그리고 소공두형으로 구분된다. 무뺄목형은 1출목좌우대가 귀살미에 면 접합 되는 방식으로 좌우대의 뺄목이 없다. 뒤이어 귀살미와 결구된 1출목좌우대는 사두뺄목형과 소공두형으로 전개된다. 특히 사두뺄목형은 익형공과 첨차로 구성된 기존의 방식을 차용한 것이며, 소공두형은 익형공인 사두가 첨차인 소공두로 전개된 것이다. 이와 같은 귀포의 변화는 귀잡이첨차와 익형공, 그리고 평좌의 공포가 큰 역할을 하였다.

중국의 귀포변화를 바탕으로 무량수전의 귀포를 고찰하였다. 무량수전의 귀포구성을 보면, 1출목좌우대가 귀살미에서는 사두뺄목형으로 되고, 귀주살미에서는 면 접합하고 있어 과도기 유형 중 두 방식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런 구성은 요대 초기의 귀포 양상과 유사하다. 그리고 12세기 초에 간행된 《영조법식(營造法式)》의 귀포 규정이 계심조인 소공두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무량수전 귀포는 법식이 반포된 시기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1출목좌우대가 결구 됨으로써 병첨인 2출목좌우대의 중앙 소로도 생략되었다. 즉, 1출목좌우대의 결구로 공포구성의 통일성이 약화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또한 1출목좌우대와 결구 되는 귀살미의 구조적 약화도 나타나 여말선초 주심포계 건물인 고산사대웅전 귀포에서는 1출목좌우대를 채용하지 않는 초기형이 다시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무량수전의 1출목좌우대가 과도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편 원형이라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무량수전 좌우대가 요대초기의 특성을 보인다는 것은 살미에 적용된 단재(單材)와 족재(足材)의 구성, 포벽공의 구성방식, 그리고 앙서형 초각과 초공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상부의 하중을 가장 많이 받는 공포부재인 귀살미는 가장 먼저 족재로 전개되었다. 무량수전의 주상살미는 외부에만 암계(闇?)를 둔 단재 위주로 되어있는데, 《영조법식》에서 화공(살미첨차)을 족재로 규정하고 있어 무량수전의 단재 살미가 영조법식이 반포된 시기보다 이른 시기성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무량수전의 귀살미대첨에 단재가 적용된 것은 비교 대상 중 五台南?寺大殿(782년)에서 볼 수 있는 고식기법이다.
무량수전의 포벽공은 겹중공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은 요?북송대 초기 무앙계 건물에서 가장 유사한 구성을 볼 수 있다. 당송대의 포벽공은 남방지역에서 단공조의 전통을 이어가는 반면 북방지역에서는 소첨과 대첨이 중복된 겹중공조 형식을 보인다. 《영조법식》에서는 5포작(2출목) 투심조인 경우 포벽공(부벽공)의 구성은 나도공(주심소첨)-만공(대첨)-소방-영공 순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중공조와 단공조가 겹합된 방식으로 주로 겹중공조 이후에 확인된다. 즉, 무량수전의 겹중공조 포벽공 구성은 영조법식보다 선행되는 기법임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 살미 구성에서 앙서형 초각과 초공은 고대 권두형으로 마무리되던 기법과 다른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앙서형 초각과 도리안초공은 무량수전의 모든 도리 하부에 동일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와 같이 도리를 받는 구조적 통일성은 고대 동아시아 건축에서 폭넓게 적용된 기법이다. 무량수전과 같이 도리받침구조에서 통일성을 보이는 사례는 당대의 건물과 북송대 초기 소수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그러므로 앙서형 초공이나 도리안초공의 구성방식 역시 무량수전 공포를 요·북송대 초기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상과 같이 무량수전 공포의 시기성에 대한 검토 결과는 학계에서 추정하고 있는 고려 중기가 아니라 고려 초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량수전 공포가 갖는 계통적 특징으로 귀포 좌우대의 초공형 뺄목과 귀소로의 배치방향, 도리받침첨차, 그리고 도리안초공의 구성방식을 고찰하였다.
무량수전 좌우대에 적용된 초공형 뺄목은 당송대 귀포에서 소수의 사례에서만 볼 수 있다. 북위시대 귀포를 구성하던 대표적인 첨차형식인 꺾임첨차는 목구조가 발전하면서 결구에 유리한 방형 뺄목과 초각이 부가된 초공형 뺄목으로 전개된다. 즉, 무량수전의 초공형 뺄목은 북방계 귀포 구성방식과 연관되며, 이후 여말선초 홍성 고산사대웅전으로 계승되어 우리건축의 특징이 된다. 주목되는 것은 북방계 귀포의 특성이 좌우대 방향으로 배치된 무량수전의 귀소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좌우대방향으로 귀소로 역시 좌우대를 중요시한 북방계 귀포 구성기법과 관련성이 크며, 이는 당송대의 귀소로가 모두 귀살미방향으로 배치되는 방식과 다르다. 하지만 당대 중기 이전과 일본의 平安시대 이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중기까지 무량수전 귀소로와 같은 배치 사례를 확인할 수 있어, 북방계 귀포의 구성방식이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계승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당송대 건물 내부에서 도리를 받는 첨차 구성방식은 당대에 형성된 소첨과 단혀로 된 사례가 가장 보편적으로 적용되었다. 하지만 무량수전에서는 포벽공을 포함하여 도리를 받는 첨차는 모두 소첨과 대첨으로 이루어진 중공조를 보인다. 이는 단공조가 주류를 이루는 당송대 방식과 다르다. 도리받침첨차가 중공조를 보이는 사례는 오대 이후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요의 영역에서 중공조를 사용하는 빈도가 가장 높다. 무량수전과 같이 통일성을 보이는 사례 또한 요대 초기건물에서 확인된다. 이는 요대 건축과 무량수전의 친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조법식》의 도양에는 도리받침첨차를 상대공에 중공조를 배치하고 하부 대공으로 내려올수록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어 무량수전과 북송 말 《영조법식》에 표현된 건축기법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 공포에서 북방계의 특성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무량수전에서 도리받침구조에 적용된 초공은 남방계 건축의 대공 구성과 친연성이 높다. 북송 초기에 중건된 ?田元妙?三?殿의 도리받침구조는 무량수전과 같이 도리를 받는 초공구성이 반복적이고 통일성을 보이고 있어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한다. 이는 종대공 구성에서 화반을 적극 채용해 오던 남방계의 지역성에 오대 이후 전통성이 강조되던 시대성을 반영하여 元妙?三?殿에서 도리안초공의 통일성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元妙?三?殿의 도리안초공은 단일부재에서 통일성을 확인할 수 있을 뿐 무량수전과 같이 앙서형 초각까지 확장되지 않으며, 북송대 이후 건물에서 유사한 통일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우리나라의 여말선초 건물에서는 도리안초공의 통일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무량수전의 도리받침구조(대공)는 초공과 앙서형초각으로 구성된 화반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것은 여말선초 주심포계 대공으로 계승된다. 이는 중국에서 북송대 이후 촉주형 대공으로 전개되는 경향과 다르다. 따라서 무량수전의 도리안초공이 남방계 건축과 친연성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고려 초기 우리건축의 특징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무량수전 공포의 계통성 검토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량수전 공포가 송대의 건축기법인《영조법식》과 다르며, 대부분 요대 무앙계 건물과 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 남방지역과 유사한 점 또한 확인된다. 이런 결과는 무량수전의 중건시기가 중국의 남북지역과 교류가 많았던 나말여초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무량수전 공포의 여러 부분, 즉 귀포 좌우대의 결구방식이나 포벽공의 구성, 도리받침구조와 도리받침첨차의 구성방식 등에서 공통적으로 요?북송대 초기의 특성을 보이지만 한편으로 당·송대 건축기법과 차이점 또한 적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당송대 공포체계와 다른 무량수전의 공포 구성기법이 여말선초 주심포계 공포로 계승된다는 것은 적어도 고려 초기 중국과 다른 공포체계가 정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추론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무량수전 공포를 지금까지 남송의 영향으로 형성된 대불양으로 분류하고 있는 일본학자들의 주장은 시기성과 계통성 모두에서 오류이므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목차

차 례
Ⅰ. 서 론 1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1
가. 연구 배경 1
나. 연구 목적 3
2. 연구의 대상 및 방법 6
가. 연구대상과 범위 6
나. 연구 방법 12
다. 용어 정의 및 표기방식 15
Ⅱ. 선행연구 성과와 한계 21
1. 선행연구 분석 21
2. 고려시대 공포연구 한계 36
Ⅲ. 공포의 형성 및 전개 42
1. 공포의 형성 42
가. 공포의 구조체계 42
나. 공포의 상징체계 47
2. 고대 공포의 전개 52
가. 한대(漢代) 52
나. 남북조와 수대 58
다. 당대 초기 65
3. 소결 72
Ⅳ. 唐宋代 건축과 무량수전 좌우대 구성 73
1. 唐宋代 귀포 좌우대 결구유형 73
가. 초기형 73
나. 과도기형 77
다. 정형 83
라. 宋 《영조법식》 좌우대 형식 90
2. 唐宋代 좌우대 변화요인 100
가. 익형공 결구 100
나. 귀잡이첨차 결구 109
다. 평좌 계심조 115
3. 무량수전 좌우대 구성 특성 123
가. 1출목좌우대의 과도기형 구성 123
나. 2출목좌우대의 병첨 구성방식 128
4. 소결 136
Ⅴ. 무량수전 공포 특성 138
1. 시기성 고찰 138
가. 단재 위주 살미 구성 138
나. 겹중공조 포벽공 구성 149
다. 앙서형 초각과 초공의 결구 160
2. 계통성 고찰 168
가. 북방계 귀포 구성방식 168
나. 북방계 중공조 도리받침첨차 구성 177
다. 남방계 도리안초공의 배치 184
3. 소결 194
Ⅵ. 결 론 197
참고 문헌 202
Abstract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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