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한국의 1세대 건축가인 김수근(金壽根, 1931∼1986)의 도시계획에 나타나는 ‘인공대지’를 분석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김수근의 대규모 도시 계획안들에 나타나는 인공대지 개념을 분석하여 그 특성과 의미를 밝히고, 나아가 김수근 도시계획 아이디어에서 인공대지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김수근의 도시계획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실무자들의 기록이나 도면, 당시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폭 넓게 이루어져왔으나, 그의 도시계획 아이디어가 담겨있는 여러 글들을 심도 있게 분석, 혹은 이를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에 적용하고자 했던 김수근의 도시계획 아이디어에 대해 연구한 문헌은 충분치 않아 보인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까지 김수근의 건축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글이 존재하지만, 본 연구는 그중 비교적 초기에 작성되었으며 건축에 대한 이상적 사고가 가장 뚜렷한 「미래의 도시상」(1962)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여기서 나타나는 인공대지 개념을 분석하여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수근의 대표적인 도시계획안인 세운상가와 여의도계획안에서 그는 인공대지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그가 글을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르코르뷔지에의 도시계획부터 일본 유학 시절부터 영향을 받았던 단게 겐조까지의 명백한 연관성을 생각할 때, 김수근 인공대지의 해석에 있어 근대건축에서의 인공대지 또한 파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본 연구는 1962년 김수근의 「미래의 도시상」에서 추출한 네 가지 특성을 바탕으로 세운상가 계획안(1966-67)과 여의도계획안(1969)을 분석했다. 이에 따른 연구의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김수근이 「미래의 도시상」에서 인공대지를 도입하게 된 구체적인 요인과 특성은 ‘보차분리’, ‘밀도향상 및 녹지확보’, ‘개별 주거의 융통성’, 그리고 ‘미래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분석됐다. ‘보차분리’는 인공대지 도입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으며, 이 모든 요인들의 기저에 암시된 것이 그의 ‘미래주의에 대한 열망’이라 하겠는데, 여기서 그는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피력한다. 결국 본고는 김수근의 인공대지가 내포한 결과적 이미지를 메가스트럭처의 미래주의 입체도시로 규정했다.
2) 세운상가 계획안(1966?67)의 인공대지는 3층의 보행데크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며, 일부만 실현됐으나 5층 이상의 주거공간과 옥상정원에서도 확인된다. 여의도계획(1969)의 경우 자동차로와 분리된 거대한 보행로 및 시민광장에서 ‘새로운 지면’이라는 인공대지의 요소가 두드러지며, 주변의 녹지와 어우러진 상업지구의 고층건물들은 김수근이 서술한 “용립(聳立)하는 인공대지군의 고층탑연쇄상형”에 잘 부합된다. 이렇게 볼 때, ‘보차분리’야말로 두 프로젝트 모두에서 분명히 나타난 인공대지의 요소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인공대지로 인한 ‘밀도향상 및 녹지확보’의 요소도 각각의 사례에 맞게 드러났는데, ‘개별 주거의 융통성’ 측면은 두 경우 모두 뚜렷하지는 않으나 가능성만큼은 시사됐다고 하겠다. 그리고 두 사례 모두에 ‘미래주의에 대한 열망’이 내재했는데, 프로젝트 규모가 하나의 건축물에서 도시계획으로 확장된 까닭에 여의도계획의 경우가 김수근이 서술했던 ‘미래의 도시상’을 한 단계 더 구체화했다고 볼 수 있다.
3) 1960년대 김수근의 인공대지 개념과 적용안은 건축가의 이상과 한국적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수반하는데, 이는 세계적 건축 흐름과 김수근 건축의 관계나 건축가 자신의 발전 과정에 대한 논의로도 이어진다. 결국 김수근이 제시한 이상적 도시프로젝트의 궤적은 한국 현대사의 복잡다단한 지층을 드러냄과 동시에 한국의 현대건축을 세계적 지형도 속에 반추케 하는 인자가 된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김수근 인공대지는 르코르뷔지에로 대표되는 근대건축의 그것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또한 단순히 근대건축의 그것을 답습한 이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1960년대 후반 한국적 배경에서 이상적인 도시계획개념이 어떻게 현실에서 구체화되는지를 말해주는 건축적 결과물이다. 이는 비단 인공대지라는 한 가지 개념뿐만 아니라, 이후 그의 건축에서 나타나는 한국적인 건축에 대한 탐구에서도 엿볼 수 있는 사항이며, 김수근이라는 한사람의 건축가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즉, 한국건축에서 근대건축 아이디어 계승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