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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전병희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유상현
발행연도
2017
저작권
연세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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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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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말리엘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매우 독특한 존재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두 명의 가말리엘을 언급한다. 한 명은 사도행전 5:33-39에 나타나는 산헤드린의 가말리엘이고, 또 한명은 사도행전 22:3에서 바울이 자신의 스승으로 밝히는 가말리엘이다. 본 논문은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 아닌 동명이인(同名異人)임을 밝힌다. 산헤드린의 가말리엘이 힐렐학파의 가말리엘이라고 한다면, 바울의 스승으로 지칭된 가말리엘은 샴마이학파의 가말리엘이다.
누가가 묘사하는 가말리엘은 부정적 상(像)과 긍정적 상(像) 둘 모두를 가지고 있다.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이면서 동시에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다. 누가-행전에서 바리새인은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이고, 산헤드린은 예수처형의 주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말리엘의 연설로 말미암아 사도들은 방면되고, 안전이 확보되고, 복음이 전파된다. 이러한 ‘가말리엘의 양면성’(兩面性)은 바리새적 유대교와 로마 제국을 향한 ‘이중호교론’ 혹은 ‘이중견제론’이라는 누가 교회공동체 누가 문서의 배후 집단을 누가 교회 혹은 누가 공동체로 명명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누가 문서의 수신집단을 ‘누가 교회공동체’로 지칭할 것이다. 이것에 대한 논의는 서론에서 밝히겠다.
의 반응과 연결된다.
예루살렘 멸망이후 로마 제국과 바리새적 유대교는 주후 1세기 말 일정기간 동안 상대적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로마 제국은 팔레스틴을 안정적으로 다스려야 했고, 바리새적 유대교는 평화를 희구하였다. 로마 제국은 전후에도 여전히 바리새적 유대교에게 합법종교(religio licita)의 지위를 부여했고,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산헤드린 의회도 허용했다. 이러한 로마 제국과 바리새적 유대교의 일시적 평화 내지는 상대적 우호관계는 누가 교회공동체에게 이중박해라는 정황을 배태(胚胎)시킨다. 이중박해의 정황 속에서, 누가는 한편에서는 바리새적 유대교와 로마 제국을 향해서 예수운동의 무해함을 변증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바리새적 유대교의 정당성을 반박하며 로마 제국의 통치이데올로기를 견제한다. 누가는 가말리엘 연설을 통해 이중호교론과 이중견제론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전개시킨다.
바리새적 유대교와의 관계에서 가말리엘의 부정적 측면은 바리새적 유대교를 향한 견제를 드러낸다.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의원이다. 누가문서에서 산헤드린은 예수 죽음의 실질적 배후로 지목되고, 사도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서는 기구이다. 누가의 보도 속에서 가말리엘은 마치 산헤드린을 대표하는 인상을 준다. 누가-행전의 바리새인들은 예수 부활을 실질적으로 인식하지도 믿지도 못함으로, 자신들이 가진 부활신념을 따르는데 실패한 자들로 그려진다. 현재의 바리새적 유대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데, 바리새적 유대교는 예수운동을 핍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거절함으로 구약의 부활신앙을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바리새적 유대교는 로마황제의 신정일치(왕-로마 황제, 구원자-로마 황제)에 타협하여, 구약의 하나님-왕권사상을 포기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왕은 로마 황제이다. 그러나 바리새적 유대교와 달리,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부활한 예수’를 ‘왕(av과 구원자’로 산헤드린 앞에서 담대하게 선포한다(행 5:30-31).
누가는 가말리엘의 연설을 통해 바리새적 유대교를 견제할 뿐만 아니라, 누가 교회공동체의 예수운동이 사람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웅변한다. 바리새적 유대교를 향한 누가 교회공동체의 자기설명은 누가 교회공동체의 선교적 지평과 연관된다. 누가 교회공동체의 선교 지평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양자가 설정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바리새적 유대교를 향한 기독교의 자기변증은 유대인들을 향한 기독교의 자기설명이 된다. 더 나아가 누가는 실존적으로 인격적으로 성령을 체험하고 누리는 누가 교회공동체를 강조하고, 누가 교회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증인들로 규정함으로 바리새적 유대교와의 차별을 시도한다.
가말리엘 연설에는 ‘하나님 대적자들’(theomacoi, fighting against God) 개념이 진술된다. 하나님 대적자들 개념은 신약 어느 곳에서도 대응단락이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개념이다. theomacoi라는 누가적 표현에는 로마의 통치이데올로기(황제 숭배와 후원자 체제)를 견제하려는 누가의 심중(心中)이 담겨있다. 그러나 가말리엘 연설에는 예수운동이 드다와 유다운동과 같지 않다는 로마 제국을 향한 호교론도 담겨있다. 이 호교론에는 합법종교의 지위를 획득하길 원하는 누가의 소망이 투영되어 있고, 앞으로의 선교의 장(場)이 될 로마 제국과의 불필요한 갈등과 충돌을 피하려는 누가의 바램도 담겨있다.
앞으로의 선교의 장(場)이 될 로마 제국, 그리고 세상의 모든 곳에 닿을 수 있는 열린 땅끝 제국의 수도 로마는 누가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반면 로마 제국은 누가 교회공동체의 예수운동을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실존하는 최고 권력이다. 이것은 로마 제국에 대한 누가의 부정적 인식이다. 따라서 누가 교회공동체는 선교라는 본령을 위해 로마 제국의 양가성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누가 교회공동체는 선교라는 과업을 위해 로마 제국의 긍정적 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해야 하고, 로마 제국의 부정적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누가의 독자들에게 로마 제국은 ‘열린 가능성’으로 남겨져 있다. 로마 제국이 누가 교회공동체의 선교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면, 로마 제국은 누가의 독자들에게 인정되고 수용될 것이다. 반대로 로마 제국이 누가 교회공동체의 선교의 장애물이 된다면, 로마 제국은 누가의 독자들에게 견제될 것이고 거절될 것이다. 그 결론은 누가 교회공동체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열린 미래를 바라보며 열린 결론으로 끝난다”고 진술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누가의 개방성과 보편성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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