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평가 영역에서는 학습 결과를 측정하는 평가 방식(Assessment of Learning)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교사가 평가 주체가 되어 학습자의 수준을 엄밀하게 측정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교수·학습과 평가는 분리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점점 평가의 개념이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 학습으로서의 평가(Assessment as Learning)로 변화해나가며 평가 과정 속 학습자 역할이 강조되고, 학습과 평가가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을 반영하여 자기평가는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도달정도를 판단하기 때문에 반성적 사고를 촉진시켜 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자기관리능력을 길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학습자 수준을 가늠하는 진단 도구의 역할 외에도 자기평가는 학습 도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평가의 효과와 의의가 강조되며 거의 모든 2009 개정 초등영어 교과서에도 자기평가를 도입하여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체계적인 활용으로 이어지기에는 자기평가 문항의 내용범위가 넓고 학습 맥락과 동떨어져 있으며, 학습자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어휘가 포함되는 등 여러 문제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교과서형 추상적 자기평가 문항 형태와 이에 대안적인 문항 형태를 고안하여 진단 도구, 학습 도구로서 자기평가의 역할을 탐구하고자 한다. 위 연구 목적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연구문제를 설정한다.

첫째, 구체적·추상적 자기평가 문항을 활용한 초등영어 학습자의 자기평가는 교사평가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둘째, 구체적·추상적 자기평가 문항을 활용한 초등영어 학습자의 자기평가는 학습자 수준에 따라 교사평가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셋째, 자기평가를 통한 학습자들의 성찰 수준은 어떠한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 1학급 22명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실험 및 비교 집단으로 11명씩 구분하였다. 1개 단원을 대상으로는 평가자 훈련과 자기평가 연습을 하였고 총 7개 단원동안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때, 실험 집단은 구체적 자기평가 문항을, 비교 집단은 추상적 문항을 사용하여 매 단원이 끝난 후 자기평가를 실시하였다. 두 자기평가 문항 형태의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 교사평가 또한 동시에 이루어졌다. 평가 대상 영역은 자기평가와 교사평가 모두 언어 4기능과 학습 태도 3가지 총 7개 항목으로 구성하였다.
첫 번째 연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가가 끝난 후, 교사평가 점수와 실험 및 비교집단의 점수 상관관계를 구하여 통계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두 번째 연구문제를 위해서는 학습자 수준(상위, 중위, 하위)에 따른 평가 상의 효과를 분석 시 고려하였다. 추상적 혹은 구체적 자기평가 문항을 사용한 특정 학습 수준에 해당하는 학습자의 자기평가 결과와 교사평가와의 상관관계를 구했을 때,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 검증하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연구문제 분석 시에는 공통적으로 자기평가 소감문, 학습자 면담, 사후 설문지에 드러난 학습자의 자기평가 과정 및 점수 부여 기준을 포착하여 통계 결과를 뒷받침해주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연구문제 분석 방법이다. 먼저 선행연구와 학습자 성찰 양상을 종합하여 성찰 수준을 ‘인식, 분석, 목표 설정, 계획, 실천’의 5단계로 설정한 후 자기평가 소감문을 대상으로 내용분석을 실시하였다. 이때 학습자의 성찰 아이디어를 수집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전반적인 학습자 성찰 수준을 확인한 후에는 자기평가 문항 형태, 학습자 수준에 따른 성찰 수준을 비교하여 학습자가 속한 집단의 특성에 따른 공통적인 성찰 모습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성찰이 일어나는 학습자와 그렇지 않은 학습자를 살펴 성찰에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치며, 높은 수준의 성찰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요구되는지 탐색하였다. 자기평가 소감문 외에도 사후 설문지, 면담 자료를 통해 성찰을 둘러싼 학습자의 반응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을 통해 얻은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언어4기능 영역에서는 읽기 및 쓰기, 모든 학습 태도 영역에서 구체적 자기평가가 추상적 자기평가보다 교사평가와의 상관관계가 유의미하게 높은 모습을 발견하였다. 평가 과정에서 구체적 자기평가 형태는 학습자가 문항을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어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안내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수업 맥락과 목표 활동 예시 등이 포함되어 있어 학습 내용의 회상을 도와주었고 이는 결국 정확한 학습 진단으로 이어졌다. 반면, 추상적 자기평가 형태를 접한 경우에는 문항에서 요구하는 특정 내용이 아닌 평소 스스로가 인식한 자신의 능력에 기초하여 평가를 하거나, 잘못된 기준을 적용하는 학습자 사례가 존재하였다.
둘째, 구체적 자기평가는 모든 수준의 학습자가 교사평가와 상관관계를 유지하며 비교적 객관적인 학습 진단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으나, 추상적 자기평가는 대부분 교사평가와 관련이 낮은 평가 결과를 나타냈고, 학습자 수준에 따라서도 상관계수에 차이가 있었다. 원인 분석 결과, 구체적 자기평가 문항 속 평가 기준은 학습자 주관성의 개입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즉, 평가 기준에 비춘 자신의 수행에 근거하여 평가를 하도록 한 것이다. 결국 구체적인 자기평가 문항 형태가 상위, 중위, 하위 학습자 골고루 정확한 평가를 하도록 도와주었다는 점은 학습 진단 도구로서 자기평가의 개발 방향을 제시해준다.
셋째, 구체적 자기평가 문항의 활용은 특히 하위 수준에 해당하는 학습자의 성찰에 도움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구체적 자기평가 문항을 적용한 실험 집단의 성찰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타났고, 성찰의 수준 또한 높은 단계까지 이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비교 집단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학습 성취도의 유의미한 향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체적 자기평가 문항의 효과는 하위 학습자의 경우 보다 뚜렷하게 드러났다. 하위 학습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잘 모르고 있는 등 성찰 경험이 부족하였다. 하지만 구체적 자기평가 문항을 사용하자, 스스로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목표를 세우는 일련의 자기 주도적 학습양상을 보였다. 추가적으로 ‘실천’단계의 높은 성찰을 보인 학습자들을 분석한 결과, 추상적 자기평가 문항을 활용한 학습자 중에서는 상위 수준만 이에 해당되었다. 하지만 구체적 자기평가 문항의 경우 상위 수준 뿐 아니라 중위, 하위 수준 학습자도 높은 수준의 성찰 가능성을 나타냈다. 따라서 자기평가가 성찰을 통해 학습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며, 그 중에서도 구체적 문항 형태의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위 연구결과로부터 자기평가를 둘러싼 시사점은 다음과 같이 도출할 수 있다.
먼저, 자기평가의 효과적인 시행을 위해 현 초등영어 교과서의 자기평가를 되돌아보고 학습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어야 한다. 학습자들은 교사평가와 상관관계를 유지하며 자기평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자기평가 제시 방법과 관련하여 구체적 문항의 형태로 개발해나간다면 학습 진단 도구 및 성찰을 통한 학습 도구로서 자기평가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기평가가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꾸준한 교사와의 상호작용이 요구된다. 구체적 자기평가 문항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항상 높은 성찰 수준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학습 동기 혹은 성찰 전략의 부족 등 문항 외적 요인 또한 학습자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상적인 자기평가 문항 형태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평가 과정에서 교사가 학습자와 상호작용하며 평가를 도와주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때, 교사의 안내와 피드백은 학습자들이 올바른 기준을 갖고 자기평가를 하도록 도와줄 수 있고, 평가 후 학습방향 설정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후속 연구 시에는 자기평가를 둘러싼 교사의 피드백과 도움을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탐색하는 것도 교육적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