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은 사무만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외관상 중앙과 지방의 역할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사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방자치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이처럼 지방분권이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자율권을 부여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면, ‘재정분권’이란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간섭ㆍ통제를 받지 않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를 의미한다.
재정분권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을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진정한 의미의 재정분권이란 재정적 자율성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선호에 따라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때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성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면서 세수는 감소한 반면, 주민의 지역개발과 복지증진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높아졌고, 그에 따라 지방재정 수요가 급증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재정환경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정부담이 악화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에서도 나타나는 공공부문의 공통문제이다. 과거에 비해 공공재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출해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재정의 지출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간의 적절한 역할 배분과 그에 상응하는 재원배분이 필요하다. 가까운 일본의 삼위일체 개혁의 경우 중앙의 통제에 의한 지출보다 지방정부의 자율적 지출을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세계 최대 부채국가인 일본에서 지방정부의 재정자율성을 확대하는 개혁이 이루진 밑바탕에는 재정분권이 재정지출 효율성을 담보하리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재정분권은 내용적 측면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충분한 자율성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선진국들에서 재정분권을 강화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은 재정분권의 순기능 때문이다. 재정분권은 첫째, 지방재정의 투명성 및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고 둘째, 책임 있는 재정운용을 통해 지방의 경제적 효율성을 증진시키며 셋째, 지역 경제성장에 따라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재정분권의 순기능은 동시적으로 발생되기 보다는 순차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재정분권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분권의 효과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재정분권을 통한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실무자들을 만나보면, 재정압박으로 인해 재정자율성이 위축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편성 가능한 가용재원이 줄어들어 신규 수요에 대응하고 자체사업을 전개하는데 제약이 있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가용재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재정분권이 재정자율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재정분권과 지방자치단체의 가용재원과의 관계를 분석하여, 한국의 재정분권화 정책이 어떤 효과를 보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용재원은 학술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실천적으로 예산과정에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용어이다. 가용재원의 실천적 의미가 큰데 반해 학계의 논의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현 시점에서 가용재원을 논의의 장으로 들여오는 것은 재정분권의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의 재정분권화 정책의 방향을 논의하는데 보다 실질적인 이해와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된다.
재정분권 지표는 세입분권을 세 가지로 분류하였고, 세출분권과 더불어 네 개의 독립변수를 구성하였다. 종속변수 가용재원은 사업적 지출의 의미를 갖는 가용재원(B1)과 자율적 지출의 의미를 갖는 가용재원(B2)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지난 1997년부터 2014년까지의 지방재정 자료를 가공하여 패널분석을 하였다.
분석결과 세출분권이 지자체의 도덕적 해이를 촉발시켜 가용재원을 감소시킬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재정분권의 역기능이 한국의 지방정부에서도 무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지방세만으로 측정한 세입분권은 지방정부의 재량적 가용재원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국고보조사업과 지방비 부담이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자체수입으로 세입분권을 측정하였을 때 비로소 감소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한국의 재정분권에서 지방세가 차지하는 역할이 그만큼 제한적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한편 광역시에 비해 도의 경우에는 자체세입으로 측정한 세입분권에서도 재량적 가용재원을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 광역시보다 도의 재정자율성이 더 제약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가용재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지역사회의 공공서비스를 대응하기 위한 지방정부 운신(運身)의 폭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지표가 지방정부의 재정력이나 서비스 공급 재원으로 측정되어왔지만 가용재원이 그 지표들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용재원(B2)는 지방정부의 재량적 판단이 가능한 재원의 규모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재정분권의 대리지표로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