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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외국인의 거주가 한성부에서 처음 허용된 이후 일본인들은 남산 북록 진고 개 일대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인들은 한반도 내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점차 강 화됨에 따라 그 거주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갔으며, 한성부의 도시경관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 거류지의 변화는 1894~95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러일전쟁을 계기로 세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제 1기는 남산 위에 공사관을 건축하면서 본격적으로 거 류를 시작한 1885년부터 청일전쟁 이전까지의 1894년까지로서, 이 시기 거류지는 남 산 북록의 진고개 일대에 소규모의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마련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 다. 제 2기는 1895년 청일전쟁 이후부터 1904년 러일전쟁 이전까지에 이르는 시기로, 거류지는 남대문로 방면으로 확장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일본식 마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지막 시기인 제 3기는 1904년 러일전쟁 이후부터 1910년까지로, 거류지의 영역은 남촌 일대 전역 뿐 아니라 용산을 비롯한 성외지역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며, 거 류지는 식민화의 전초기지로서 정주지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거류지 도시환경의 변화는 보다 구체적으로 도로환경, 상업환경, 생활환경으로 나 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거류지 내 도로환경은 도로개수사업과 상하수도 구축사 업 등의 도로환경개선사업과 그리고 가로시설물들의 설치 등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었다. 거류지 도로환경 개선사업의 시행목적은 교통상의 편리와 위생 관리, 그리고 상 업의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서, 1895년부터 1910년에 이르는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진 행되어 나름대로의 성과를 만들어 냈으나, 민간 차원에서 시행된 것이었기에 부분적 이고 임기응변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상업환경의 경우, 거류 초기에는 일본인 거류민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기 위한 소 수의 상점들로 이루어진 것이 전부였으나, 점차 거류민 인구가 증가하고, 한일무역이 성장함에 따라 한국인과 서양인들도 주요 고객이 되면서 그 수가 대폭 증가하였고, 상점 자체가 대형화, 복합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거류초기 진고개 일대, 즉 본정 4~5 정목 일대와 수정 일대에만 설치되었던 일본인 상점들은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남대문로로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본격적으로 한성부 상계에 침투하기 시작하였으며, 본정 도로를 비롯한 거류지 주요 도로들의 양 옆에 일본식 상업건축인 마치야와 서양식 상 점들을 건축하고 광고와 장식 등을 더하여 독특한 일본식 상업가로환경을 구축하였 다.
도로환경과 상업환경이 도시의 선형요소인 가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거류지의 전체적인 성격과 분위기를 형성한 것은 생활환경의 구축에 의해서였다. 생 활환경은 자치, 행정, 의료, 교육 제도 등 도시 제도의 도입과 학교, 병원, 종교, 유흥 시설 등의 도시 시설들의 설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생활환경 은 상당히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행정 및 교육과 위생 제도와 그 시설들에 서는 상당히 근대화가 진전된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나, 거류민들의 일상적 의례들 과 생활, 특히 종교 문화나 유흥 문화 등에서는 에도 시대의 문화가 그대로 나타남으 로써 상당히 ‘일본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로환경, 상업환경, 생활환경의 구축으로 만들어진 거류지 도시환경은 외부적으로 는 같은 시기 일본과 한성부와 밀접한 영향관계에 놓여 있었다. 거류지에는 메이지유 신 이후의 근대화 양상과 함께 에도식 생활문화가 혼재하는 과도기적 일본의 모습들 이 그대로 나타났으며, 거류지의 도시변화는 한성부의 도시변화와 상호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일본인 거류지의 혼종 적인 도시환경은 국가 주도의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민간 주도의 아래로부터의 변화라는 특징을 가진다. 즉, 이 곳에서의 도시환경의 변화는 정치적인 식민지화가 시 작되기 이전에 일본인 거류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생활을 위한 도시환경을 구축해 낸 것이었다. 그러나 통감부 설치 이후 이 지역의 도시변화의 성격이 식민지화와 결 합되게 되면서, 일본인 거류지의 도시변화는 1910년 이후 한성부의 근대식민도시화와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게 되었다.
이처럼 거류지의 도시 변화가 1910년 이후의 변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 서 이 지역의 변화는 전통도시 한성부에서 식민도시 경성부로의 전이과정에서의 연결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의미를 가진다. 비록 이 연구는 1910년 이전까지의 거류지 도시 변화 자체에만 치중하였지만, 앞으로는 1910년 이후와의 영향관계를 살펴보는 후속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