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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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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신은영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김홍남
발행연도
2013
저작권
이화여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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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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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현재 그 존명에 대해 관음과 미륵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의 尊名 轉化 가능성을 탐색하는 한편, 토착·토속이라는 개념 설정을 통해 석상의 양식사적 위치를 비정하고자 하였다.
그동안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을 둘러싸고 조성 배경과 존명, 양식사적 의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지만 합의된 결론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관음의 도상을 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은진미륵’이란 이름으로 불려왔고, 통일신라시대 불교조각과 양식적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 독특한 모습 때문에 양식사적 위치를 비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관촉사 석상의 존명을 기록한 자료들이 도상적 사실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이 상에 대한 당대의 인식의 표현이라는 점, 석불에서의 도상-존명 간 불일치 현상 및 분리 가능성 등에 착안하여 기존의 논의를 확장하였다. 즉, 석불의 圖像과 尊名, 그리고 거기에 기입된 사람들의 願望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여, 불상 조성시 의도된 도상과 그것을 추후에 부르는 호칭 사이의 균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존명 전화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양식사적 측면에서는, 고려의 불교조각을 통일신라 중심적 시각에서 평가했던 기존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고려시대의 독자적 양식이 존재할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관촉사 석상의 조성 배경을 파악하기 위하여, 이색의 시와 관촉사사적비 등 이 상의 조성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야기들이 갖는 서사구조의 이중성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 이중적 서사구조를 중앙-지방 관계에 대한 메타포로 간주하여, 관촉사 석상의 조성이 ‘皇都로서의 개경’이라는 視點에서 ‘車峴以南을 지방화’하려는 裨補寺塔風水라는 담론적 실천으로 해석하였다. 다시 말하면, 옛 후백제 지역인 市津에 관촉사 석상을 조성하는 행위는 당대의 맥락에서 볼 때 ‘차현이남’ 지방에 대한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통치행위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관촉사 석상의 도상과 양식은 확실한 ‘자기 근거’를 갖는다.
가장 논란이 되는 관촉사 석상의 존명과 도상에 대해서는, 먼저 존명과 도상이 분리된 사례들을 추적하여, 어떤 결로 도상과 존명이 미끄러지는지 그 가능성을 추찰해 보았다. 그 가능성이란 고유섭과 이능화가 말했던 ‘世間’의 개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세간이 개입하여 도상-존명-원망 간 일대일 대응관계를 붕괴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세간의 개입이란, 미륵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도상적 구별에는 무관심한 불교신앙 및 造佛 주체로서의 피지배계급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들은 자신들의 원망을 불어넣은 부처를 만들되, 기존 부처들의 도상적 규정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도상적 특징들을 차용하였고,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돌에 부처라는 특징이 인지될 수 있도록 대강의 형식을 부여하여, 이를 미륵이라 불렀다. 결국 이러한 모든 원망을 품은 ‘미륵의 탄생’ 과정은 도상과 존명 간 일대일 대응관계가 해체되는 과정이자, 원래 미륵이 아닌 도상에도 미륵이란 존명을 붙일 가능성을 만들어낸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촉사 석상은 애초에 ‘관음’으로 만들어졌으나 여러 도상외적 요인에 의해 ‘미륵’으로 尊名이 轉化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관촉사 석상의 양식사적 위치를 비정하기 위하여 관촉사상과 유사한 양식을 갖는 고려시대 석불들을 완성도에 따라 분류하고, 이를 다시 토착적인 것과 토속적인 것으로 나누었다. 그 결과, 관촉사상은 이른바 토속적 양식의 석불들과는 조형 의도와 표현 능력이라는 차원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으며, 이들을 함께 지방양식으로 포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러한 양식적 ‘격’의 차이를 감안하여, 관촉사상의 양식사적 위치를 고려 전기 지배층의 자각적이고 창조적인 문화 욕구가 발현된 ‘토착적 양식의 정점’이자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적·민중적 모방이 시작되는 ‘토속화의 시점’으로 상정하였다.

목차

머리말 ... 1
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의 조성 ... 5
1. 조성 주체 및 동기에 대한 연구사 검토 ... 5
2. 裨補寺塔風水와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의 조성 ... 11
Ⅱ.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의 존명 ... 21
1. 관음보살상의 조성 ... 21
2. 관음에서 미륵으로의 尊名 轉化 ... 28
Ⅲ.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의 양식 ... 35
1. 양식 연구의 시각 변화와 그 특징 ... 35
2. 규모의 거대화 ... 40
3. 양식의 토착화 ... 45
맺음말 ... 57
참고문헌 ... 60
Abstract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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