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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일웅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98호
발행연도
2025.2
수록면
7 - 38 (32page)
DOI
10.21490/jskh.2025.2.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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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표는 강만길의 개항기 국민국가 수립에 대한 인식 양상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그가 영향을 받았던 시대적 상황 및 그가 사유했던 궤적을 살펴보았다. 강만길은 해방 이후 한국사 공부를 시작한 2세대 학자였다. 수학시절 그는 한국 지식인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던 한국의 ‘후진성’ 극복 담론과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아울러 그는 다른 2세대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실증주의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경제사학’을 통해 한국의 자체적 근대화 역량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두 갈래의 영향 속에서 강만길은 조선 후기 상공업사를 조망함으로서 ‘내재적 발전론’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강만길은 자신의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관점을 연장하여 개항기 근대국가 수립과 관련한 연구를 남기지 못했다. 이는 그가 내재적 발전론의 한계를 직시하였던 것과 관계가 있었다. 강만길은 한국이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한 이유를, 크게 전제군주제를 추구했던 대한제국 체제와 함께 입헌군주제를 추구했던 독립협회운동 및 애국계몽운동을 살펴봄으로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광무개혁’에 대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지만 그 개혁을 추동했던 대한제국 체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옹호하지 않았다. 한국의 자주적 발전 가능성을 중요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정한 민족주의의 달성도 역사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던 강만길에게 전제군주제 체제였던 대한제국은 하나의 ‘망령’이었다. 마찬가지로 강만길은 독립협회운동 및 애국계몽운동의 입헌군주제 지향에 대해서도 그리 호의적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강만길이 두 운동을 비판한 지점은 지나친 계몽주의적 입장과 함께 외세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 의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해당 운동들이 근대 국민국가 건립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급’을 사회적으로 부상할 수 있게끔 한 순기능도 있었지만, 외세에 대한 편향적 태도와 함께 국민국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탓에 궁극적으로 시민혁명을 추동할 수 없었을뿐더러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았다. 강만길의 이러한 개항기 근대국가 설립과 관련한 인식은 그가 수학 시절 목도했었던 한국 사회 상황에 대한 인식이 투영된 것이었다. 강만길은 개항기 국민국가 수립 운동의 실패를 세계정세에 대한 불인지 및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불확신에 있었다고 총괄하였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곧 4・19혁명이 ‘미완’에 그치고 5・16 군사 쿠데타를 맞이하게 된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 반성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강만길의 개항기 국민국가 수립 인식의 시대적 배경
3. 강만길의 개항기 국민국가 수립 운동 인식의 양상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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