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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진영 (한국교통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91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131 - 174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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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교천 주변지역의 신라 고분은 횡혈식석실은 없고 횡구식석곽(실)과 토광묘만이 나타나는데 대부분은 소형의 석곽묘이다. 고분의 전개양상으로 볼 때 신라는 기존 인식과 달리 한강유역 진출(553)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6세기 말 ~ 7세기 초 무렵에 아산 동부 및 천안 서부지역에 진출하여 서해안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백제와 국경이 엇물리게 되었다. 신라 무덤의 조영이 잠시 중단되는 7세기 1/4분기 무렵은 백제가 곡교천을 넘어 천안 북부의 직산 부근까지 진출한 시기였고, 7세기 중엽의 이른 시기에 곡교천유역에 재진출하게 되었다. 그 범위는 이전보다 확대된 아산 중부지역에까지 이르러 차령산맥을 두고 백제와 대치하게 되었다. 이시기부터 지역색을 띠던 석실이 사라지고 구조의 단순화와 규모의 소형화 등 규격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중앙의 통제에 따른 지배체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신라의 백제병합 이후인 7세기 후엽~8세기 전반 대에는 곡교천유역에 군현이 설치됨과 더불어 곡교천유역 전역에 무덤이 확산된다. 무덤의 규격화 현상도 더욱 심해지고 정형의 당식과대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지방사회가 중앙의 관제하에 통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백제 사비기의 묘제 전통이 남아있는 석곽도 출현하는데, 이들 무덤의 출현은 새로이 편입된 백제유민의 재편을 알려주는 지배방식의 일례로 생각된다. 이후 9세기 대부터는 기존 묘제 규범에서 벗어난 무덤이 출현하고 있어 이때부터 지방사회가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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