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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종철 (아신대학교)
저널정보
개혁신학회 개혁논총 개혁논총 제69권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41 - 78 (38page)
DOI
10.57228/KRJ.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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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풍은 1907년 독노회에서 최초로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특히 이기풍은 제주도에서 교회를 처음으로 설립하였고, 제주지역 교회들의 역사를 시작한 인물이다. ‘신앙과 사역을 통해 본 이기풍의 한국 장로교회 정체성’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첫째, 이기풍은 장로교 정체성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임을 확신시켜 주었다. 이것은 그가 보여준 ‘신사참배 거부’의 모습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둘째, 이기풍은 ‘열정적인 복음전도의 모습을 통해 장로교 정체성이 ‘지상명령(Great Commission, 마 28:18-20)’임을 명확히 보여 주였다. 셋째, 이기풍은 ‘올바른 신앙인’을 키워낸 인물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제주도 출신의 제1호 목사, 제1호 순교자가 된 이도종을 들 수 있다. 또한 그는 ‘영흥학교’를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목회에 집중했다. 기독교적 인재 양성은 한국 장로교 정체성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넷째, 이기풍은 그의 삶과 사역을 통해 ‘개혁하는 삶’을 실천하였다. 그것은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낮아짐의 자리’(빌 2:6-9)였다. 그는 ‘큰교회‘에서 존경을 받아가며 목회를 할 수 있었음에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 사역지는 여수 작은 섬마을의‘우학리 교회’였다. 우리는 이기풍의 생애와 사역을 통해 그가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붙잡았던 ‘주님께서 부르신 소명’을 생각하고 주목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었던 장로교 정체성을 늘 기억하고 확인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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