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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주현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미술사연구회 미술사연구 미술사연구 제47호
발행연도
2024.12
수록면
63 - 93 (31page)
DOI
10.52799/JAH.2024.12.4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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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가였던 민영익은 1895년경 상해에 망명해 천심죽재(千尋竹齋)를 마련하고 화가이자, 후원자, 수장가로서 삶을 살았다. 상해에서 그의 삶은 『신강신보(申江新報)』, 『신문보(新聞報)』, 『시보(時報)』 등 중국 일간지에 실려 있다. 화가로서 민영익은 금석기가 강조된 상해파의 묵난도와 다른, 조선적 미감의 묵난도를 그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민영익은 서화공회(書畫公會), 제금관서화회(題襟館書畵會) 등 상해의 대표적 서화단체에서 활동했으며, 『해상묵림(海上墨林)』, 『청대화사증편(淸代畫史增編)』, 『상해현지(上海縣志)』 등에 ‘고려 서화가 민영익’으로 이름을 올렸다. 후원자로서 민영익은 천심죽재의 모임을 주도했다. 이 모임은 조직화 된 서화단체는 아니었지만, 민영익과 교류했던 오창석, 고옹, 포화, 황산수, 예전, 오곡상 등은 해파를 대표하는 역량 있는 작가들이었다. 민영익은 이들로부터 8장 이상의 <천심죽재도>를 그려 받았다. 천심죽재는 상해의 번화가 북경로에 위치했으나 <천심 죽재도>에서는 산수 가운데 묘사됐다. 이는 문인의 서재를 이상화된 공간으로 묘사했던 명대 이래의 ‘별호도(別號圖)’ 전통을 따른 것이었다. 수장가로서 민영익은 해파 서화가의 작품과 함께 중국 고대 미술품을 다량 구입했다. 이는 김용진, 이한복 등에게 전해져 한국 근대미술 형성에 자극제가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중국 근대 사료 속 민영익
Ⅲ. 해상화파(海上畵派)가 그린 <천심죽재도(千尋竹齋圖)>
Ⅳ.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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