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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호경 (동국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19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103 - 142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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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반 남산공원은 식민지 지배정책을 선전하는 과시적 공간이자 그 모순을 드러내는 역설적 공간이었다. 또한 일본인을 위한 근대공원으로 조선인과의 차별을 보여주는 전형적 공간이었다. 이 시기 남산공원은 일본문화로의 동화를 강화하고 조선인과의 차별을 공고히 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1925년 조선신궁 건립으로 ‘신사공원’의 신성성을 강조하기 전까지 남산공원은 일본인을 위한 경성 근대공원의 효시로서 경성 남부의 대표적 행락공간이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특징을 토대로 1920년대 초반 남산공원의 식민지적 성격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1920년대 초반 총독부는 남산공원의 공공성을 활용하여 식민지 지배정책의 변화를 선전하고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러한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1921년 4월 남산공원에서 시행된 밤 벚꽃놀이와 순직경관 초혼제이다. 총독부는 이러한 관제행사를 통해 식민지 지배정책을 과시했다. 또한 남산공원은 경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식민지배의 위용을 보여주며 근대화된 경성 시가지를 조망하는 관광 명소로 기능했다. 그러나 경성에 사는 조선인들에게 남산공원은 빈곤한 삶을 마감하는 자살의 장소이자 유흥과 향락에 빠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각종 범죄가 발생하는 우범화 장소였다. 이처럼 남산공원은 일제의 지배 정당성을 과시하는 동시에 식민지 일상의 빈곤과 범죄를 직면하게 되는 역설적 공간이었다. 더불어 3․1운동 이후 민족적 위상이 높아진 탑골공원과극명하게 대비되는 식민지 근대공원으로 일본인과 조선인 간의 차별을부각시키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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