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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예원 (한양대학교 박물관) 이정철 (한양대학교 박물관)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28호
발행연도
2024.4
수록면
241 - 266 (26page)
DOI
10.52557/tpsh.2024.12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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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당성은 삼국~조선시대 초기까지 활용되었으며, 축성 시기를 달리하는 1차성과 2차성이 존재한다. 성 내에는 건물지, 집수지 등을 비롯한 여러 시설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다수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기와 중에는 명문 기와가 확인되며, 그 종류와 수량은 주목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당성에서출토된 명문 기와의 제작 기법을 통해 그 시기를 파악하고, 명문의 성격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명문 기와의 제작 기법은 장판 타날판의 사용, 측면부의 파쇄분할이라는 정형성이 확인된다. 이는통일신라 후기~고려시대 초기의 양상이며, 제작 기법과 명문 내용을 통한 세부 편년을 시도한 결과8세기 후반, 9세기, 10~11세기, 12세기, 14세기로 구분되었다. 특히 8세기 후반과 9세기에 해당하는 다수의 명문 기와가 확인된다. 명문 기와의 성격은 지명 및 행정명 관련, 간지명ㆍ연호명, 기능 관련, 해석불명으로 구분되는데, 이러한 명문 기와는 건물 축조에 기여한 집단, 성 내의 종교시설 관련, 객사 등과 같은 건물의 기능과 용도, 축조 시기 및 기념비적인 내용을 주로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당성 내 명문 기와는 8세기 후반 1차성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의 명문은 지명이나건물의 기능과 관련된 것이 다수로 명문을 새기는 방법은 방곽없이 장판 타날판을 사용하였다. 9세기에는 당성진의 설치와 함께 새롭게 2차성이 축조되면서 ‘城新(성신)’명과 같이 기념비적인 명문기와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2차성의 축조 이후 당성에서는 중앙 6부 관련이나 대외 교류의 중심지로서 객사나 관청과 관련된 명문 기와가 주로 확인된다. 이 시기의 명문 기와는 기존의 장판 타날판을유지하면서 새롭게 방곽을 사용한다. 이후 10~11세기와 12세기에는 여전히 관청이나 숙박시설과관련된 명문이 관찰되지만 14세기 이후에 당성이 문화교류의 거점 기능을 상실하면서 명문 기와도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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