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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은정 (고려청자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48號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263 - 292 (30page)
DOI
10.14769/jkaahe.2024.08.48.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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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청자와의 해석류화 문양이 강진의 자기소 생산 청자에 관양을 적용한 왕실 진공품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출발하였다. 또한 유사 용례를 비교 검토하고 문양의 사용범위와 확산 과정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다른 문양 연구와 차별성을 갖는다. 그 결과, 문양 연구에 있어 회화, 석각, 도자기, 금속공예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고찰의 중요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해석류화는 중국 당대에 신라와 왜에서 수입했던 동백을 의미하는 용어이고, 연화와 비슷한 식물학적 특성을 갖는 동백을 불교의 정토화생 개념에 대입시켜 창안해 낸 문양이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는 당대를 거쳐 송대 건축과 석각장식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중국 당송대 금속기와 도자기에도 해석류화가 간략화된 형태로 일부 시문되기는 하지만, 문양의 탄생과 발전이 주로 건축과 석각 장식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고려사회에 해석류화 문양이 유입된 경로 역시 건축과 석각이었다. 1085년 지광국사탑비가 대표적인 예이며, 아마도 고려 전반의 건축에도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11세기 후반 북송과의 교류를 통해 고려에 유입된 해석류화 문양은 12세기에 관양으로 정착되었다. 12세기 전반 왕사‧국사의 탑비, 12세기 중반 태평정, 양이정, 서루같은 왕실 이궁의 청자와, 만월대 출토 청자의 용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13세기에도 해석류화 문양을 관양으로 사용한 용례가 금속기와 사경에서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석류화 문양의 시문 주체가 12세기 중반부터 관장에서 승장과 사장으로까지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관양이 상류층에게까지 유행했던 정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고려에서의 해석류화 문양의 사용 범위는 건축, 석각을 비롯해 금속기, 도자기, 불화, 사경, 목조각에 이르기까지 문양의 발상지인 중국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따라서 해석류화는 문양의 원류와 상징적 의미, 명칭의 근거 자료, 관양으로서의 용례가 분명한 고려시대의 관양이자 시대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I. 머리말
Ⅱ. ⾭瓷⽡ 해석류화 문양의 의미와 용례
Ⅲ. 명문과 문헌 기록에 보이는 고려시대 官匠의 역할
Ⅳ. 해석류화 관양의 공유와 확산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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