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정수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영토해양연구 영토해양연구 제26권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7 - 44 (3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수토(搜討)를 설진(設鎭)·치읍(置邑)의 대안으로 이해하고, 이로써 울도군(鬱島郡)의 설치(1900) 이전 조선이 울릉도·독도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정책으로 존재했음을 밝히고자 작성되었다. 울릉도는 일찍이 해로를 통해 강원도 영동(嶺東)지역과 일본의 산인(山隂) 지역을 오갈 수 있는 요충지로 인식되어 설진과 치읍이 수차례에 걸쳐 검토되었다. 그러나 영동의 지리조건과 동해의 해양환경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고, 울릉도는 삼척(三陟)을 중심으로 마련된 연해 지역 방비체제의 외연에 존재하는 "빈섬"으로 남았다. 울릉도의 귀속을 두고 일본과 쟁계(爭界)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조선은 보다 적극적인 관리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1694년 삼척영장 장한상(張漢相)이 울릉도를 조사한 것을 계기로 설진·치읍은 시도에 그쳤으나 정기적인 수토를 통한 관리정책을 그 대안으로 삼았다. 울릉도수토는 190여년에 걸쳐 시행되었고, 울릉도사와 울릉도장이 설치된 과도기 (1884~1895) 를 거쳐 1895년까지 지속되었다. 고종의 칙령으로 울릉도가 울도군이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제되면서 수토제는 그 바통을 넘겨주게 되었다. 수토제를 주관한 삼척영장은 강원도의 유일한 수군진관인 삼척포진의 첨절제사를 겸했고, 따라서 울릉도는 수토라는 제도를 통해서 영동의 해방(海防) 체제에 편입되고 또 중앙정부의 구심력을 받게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연해 방비체제와 울릉도의 공도화
Ⅲ. 수토제의 치폐와 울릉도 관리정책의 추이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151-24-02-08985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