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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黃晶淵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미술사연구회 미술사연구 미술사연구 제46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63 - 96 (34page)
DOI
10.52799/JAH.2024.06.4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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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이인직이 1900년대 초 종로에서 운영한 원각사에 가려 실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을지로 원각사’의 재건 과정과 내부에 그려진 벽화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을지로 원각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를 계승해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제1공화국이 역점적으로 추진한 「정부수립 제1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58년 건립되었다. 그러나 개관한 지 2년만에 火魔 속으로 사라지면서 그 존재와 가치가 오래도록 잊혀왔다.
원각사는 당시 사업을 주관한 공보실의 首長을 역임했고 연극계, 미술계와 친분이 있던 오재경이라는 인물이 주도해 ‘민족예술의 전당’을 실현시킬 목적으로 건립을 추진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가 벽화를 구상하게 된 배경으로 1958년 6월에 열린 한국의집 개관 1주년 기념 書畵揮毫會가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파악했다. 아울러 남아있는 사진과 영상자료 등 시각물을 바탕으로 원각사 내부에는 총 7점의 그림이 있었으며, 이 중 6점은 김은호·이상범·허백련·김기창· 변관식·김용진이 그린 付壁畵이고 한 점은 작가가 특정되지 않은 대형 액자그림이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으나 작가들의 회고록과 영상자료를 통해 노수현·박노수·배렴·이응노 등 몇몇 화가들의 그림 역시 원각사 로비와 복도, 계단 등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원각사 벽화는 부벽화 형식으로 높이 약 5m에 가까운 대형 화폭으로 제작되었다. 당시로서는 동양화가들이 거의 처음으로 그린 대형 화폭이었으며, 소재나 표현이 화가들의 창작활동에 있어 대표성을 지닌 작품들이라는 점, 변관식·김기창처럼 전환기 화풍양식 또는 향후 그러한 활동을 예견한 작품들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회화사적 의미가 크다.
비록 원각사 벽화는 1960년 화재로 소실되어 실물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조선 말기~1950년대에 활동한 서화가들이 국가의 주문을 받아 거의 마지막으로 제작한 대형 회화이자, 단발성인 전시회와 달리 대중성, 공공성이 지속된 극장이라는 장소의 성격상 이들의 이름과 작품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958년 원각사 재건의 배경과 과정
Ⅲ. 원각사 벽화의 제작과 참여 작가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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