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인희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아태연구 아태연구 제21권 제2호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69 - 97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6-18세기는 세계가 해양을 통해 교류를 하던 시기로 고구마는 서구열강이 동쪽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동양사회에 전해진다. 고구마가 처음 전해진 곳은 중국 난아오도(南澳島)로 1584년의 일이다. 이후 일본의 류큐에는 1597년에 전해지며 쓰시마에는 1715년에 전해지고 조선에는 1763년에 전해진다. 고구마가 동양 삼국에 전해지는 과정에 나타나는 특징은 동남아시아에서 점점이 이어진 도서지역을 징검다리 삼아 느린 속도로 이동하였으며 고구마가 가장 먼저 재배된 곳은 도서지역이며 고구마의 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모두 해양세력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마의 유입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당시 동아시아 각국의 해양인식과 해양정책을 파악할 수 있다. 중국은 지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고구마의 유입에 있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나 명청시기의 계속된 해금정책으로 인하여 푸젠성(福建省)의 고구마가 저장성(浙江省)의 저우산도(舟山島)로 전해지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에서 역수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단순히 고구마의 유입에 있어 나타난 특징이 아니라 해금정책이 새로운 문물의 수용에 있어 장애로 작용하였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경우 조공책봉체제의 틀 속에서 명청보다 더 강력한 해금정책을 실시하고 육로를 통해 중국과 제한적인 교류만을 하여 세상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나라가 되었다. 결국 고려시기에는 5일이면 도달할 수 있었던 고구마가 조선시대 중후기에는 179년이 걸려 도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의 경우 화이정신(華夷精神)을 배제하고 오랑캐에게도 배워야 한다는 정신으로 개방적인 해양정책을 실시하여 고구마와 같은 새로운 문물이 이른 시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결국 각국의 해양인식은 고구마와 같은 중요 작물, 즉 선진문물의 수용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낳았고 결국은 각국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57)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