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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옥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41호
발행연도
2016.5
수록면
497 - 52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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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20세기 비금도 사람들의 간척지 조성과 이용 실태에 관한 사례연구이다. 임진왜란 때 내륙지역의 유이민들이 피난을 목적으로 비금도에 입도하였다. 이후 17~18세기에 도서 이주민들은 집중적으로 비금도에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현전하는 비금도 간척문서를 분석한 결과 조선후기에 비금도의 부속도서 14개소가 간척과정에서 소멸된 것으로 확인된다. 일제강점기 비금도의 간척사업은 정부 주도로 진행되었다. 비금도 간척지 조성 결과 가장 큰 변화는 가산항의 개발이다. 본래 비금도의 포구는 광대리에 입지하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면전-가산-대동방조제’가 조성되면서 부속도서인 가산도가 매립되어 비금도와 통합되고, 새로 가산선착장이 개설되었다. 이후 가산항은 광대리 포구를 대신하여 근?현대 비금도의 물류항구로 급성장하였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비금도에서 천일염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 시기 비금도 간척은 개인뿐만 아니라 조합이 결성되어 추진되었다. 새로 조성된 간척지의 地目은 대부분 염전으로 등록되었다. 그 원인은 1963년에 정부 주도로 제염법이 시행되면서 소금 생산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근대 비금도의 간척지는 주로 도서 이주민들에 의해 농경지로 이용된 반면, 근현대 비금도 간척지는 천일염전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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