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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공임순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35호
발행연도
2014.11
수록면
67 - 122 (5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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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구를 1960년대의 맥락에서 되짚고자 했다. 주지하다시피 김구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민족영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1960년대의 맥락에서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김구의 공적인 추도가 철저하게 억압되었다는 사실과 연관 있다. 1949년 6월 26일 암살된 이후, 김구는 어떠한 공적 추도나 기념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1960년 4?19를 맞아 김구의 공적 복권이 아래로부터 추동되면서, 김구는 비로소 제 1회 추도식이라고 해야 할 ‘11주기 추도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1960년 4?19는 이승만 정권의 정적이었던 인물들의 공적 복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김구의 추도(준비)위원회와 진상규명투쟁위원회는 가장 앞서 결성되어 김구의 공적 복권을 추진하게 된다. 특히 진상규명투쟁위원회는 김구 암살의 배후를 밝히려는 자/쫓는 자와 숨기려는 자/쫓기는 자 간의 드문 풍경을 한국사회에 새겨놓게 되는데, 이는 김구의 공적 복권이 ‘추도’에서 진상규명‘투쟁’으로 나아가는 것과 동시적이었다. 이로써 한국사회는 4?19 국면을 뜨겁게 달군 통일 운동의 열기와 더불어 김구를 더욱 문제적인 인물로 만드는 특정한 국면을 초래하게 된다. 5?16쿠데타는 한국사회의 이 뜨거운 통일 운동의 열기를 한편으로 억누르며 김구를 오직 임정의 ‘주석’ 자리에 굳건하게 올려놓는 역사적 변이와 굴절을 가져왔다. 5?16 군정에 의한 대대적인 건국공로훈장의 수여와 포상은 김구를 3?1-4?19-5?16의 동질적인 국가서사의 원점으로 삼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5?16 군정에 의한 김구의 이와 같은 체제(국가)화는 그러나 한일회담의 국면을 거치면서 그 변모의 양상을 드러내는데, 이를테면 박정희 정권이 김구와 거리두기를 했던 반면 장준하와 최인훈은 이 대치 국면을 경과하면서 김구의 대항적 기억서사를 적극적으로 주조하는 상이한 면모가 그것이다. 이것은 7?4남북공동성명을 맞아 또 한 번의 변전을 가져오게 된다. 한국사회가 김구와 맺어온 이 역사적 관계망이야말로 한국사회가 걸어온 자기상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여전히 이 김구라는 문제계(問題界)와 씨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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