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광승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33호
발행연도
2014.5
수록면
237 - 275 (3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유신체제기에 국가 이데올로기를 체내화한 애국적 국민을 생산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어떻게 역사와 전통을 재탄생시키고 활용했는지, 화랑도와 화랑도를 교육시켰던 화랑교육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박정희 정권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유신’이라는 지배의 동의를 얻기 위해 총력안보, 자주, 총화단결을 강조하였고, 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개인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애국적 국민’을 만드는데 주력하였다. 무엇보다 화랑도를 민족통일의 원동력과 총화단결의 상징적 존재로 높게 평가하며, 정치적, 교육적인 방법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도록 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1973년 5월 30일 경주에 화랑교육원을 설립해 국가에 대한 국민의 충성심을 동원하고, 국민들을 국가와 연결시켰다. 학생을 비롯한 교사, 사관생도, 공무원들은 화랑교육원에서 합숙하며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을 구현하고 국가가 원하는 주체성을 가진 인간상을 만드는 화랑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았다. 화랑교육원에 입교한 학생들의 생활은 철저히 군대식이었고, 교육은 화랑도에 대한 이론 교육과 더불어 현장학습과 분임토의를 강조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유신체제가 공고화됨에 따라 박정희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해야 하는 호국학도이자 국민총화의 기수로 만들기 위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화랑교육원의 교육을 마친 학생들의 설문조사와 소감문에 나타난 교육효과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화랑교육원은 사후지도에 소홀하였고, 가정과 학교에서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학생의 가장 큰 역할이었기에 화랑교육의 의미는 점차 퇴색되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44)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