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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옥련 (연변대학 외국어학원)
저널정보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30호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325 - 35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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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지역은 19세기 중후반부터 한반도로부터 조선인들이 이주・정착하면서 형성된 조선족사회로 주목받는 한편, 해외 화교들의 귀국 행렬과 더불어 귀국화교사회가 형성되면서 중국 동북 지역의 유일한 華僑歸鄕 중심지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특히 연변이라는 지정학적 원인으로 귀국화교사회의 95%가 북한귀국화교라는 특성이 주목된다. 북한화교들이 연변 지역으로 귀국한 시기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이며 귀국 행렬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1951년 초이다. 1962년 이후부터는 자녀들의 결혼과 진로 문제 등을 원인으로 화교들의 귀국 행렬이 이어졌다. 1970년대에 이르면 귀국화교인수는 점점 줄어드는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1979년부터 진행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북한화교들의 귀국 열풍을 불러일으켜 또 다시 귀국붐이 일어났다. 연변으로 귀국한 북한화교들은 용정과 도문을 경유하여 입국하였으며 대부분은 연변에 정착하였다. 연변을 거쳐 장춘이나 길림 등으로 거처를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1950년 초부터 시작된 이들의 귀국 행렬은 오늘날 연변 지역의 귀국화교사회를 형성하였다. 요녕성 단동시 화교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화교 인구는 약 5,000여 명 남짓이다. 북한화교 인구가 이토록 크게 감소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1950년대부터 진행된 화교들의 귀국과 정착이고 다른 하나는 화교들의 북한 국적 취득 또는 조선인과의 결혼이다. 해방 전후 북한화교들이 종사한 업종을 살펴보면 주로 면포와 비단업이다. 그 외 야채 재배를 중심으로 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가마 공장, 토목건축 및 광산 개척 등 영역에서 활동하였다. 1980년대부터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경제 발전으로 많은 화교들은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보따리 무역 혹은 규모가 큰 변방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화교자녀들은 11년의 의무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화교인수의 격감으로 화교 학생 수는 크게 감소되었으며 화교학교도 눈에 띠게 줄었다. 현재 북한에는 화교학교가 13개 있는데, 그 중 화교중학교가 4개이고 화교소학교가 9개이다. 이와 같은 실정에 따라 중국 정부에서는 북한화교자녀들이 중국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연변의 북한화교들은 대체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중국어와 조선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특성으로 중국과 한반도의 외교와 변방무역 그 외 동북3성의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 발전, 나아가 동북아의 발전을 위한 각 분야에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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