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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일례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108輯
발행연도
2023.10
수록면
99 - 140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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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두는 신라인이지만 당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설계두는 골품제 때문에 신라에서는 출세할 수 없음을 한탄해왔다. 그래서 몰래 당으로 건너갔다. 설계두는,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 遠征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크게 활약하고 죽었다. 당 태종은 설계두를 애도하면서 “외국 사람이 나를 위해 종사하다 죽었다”고 하면서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대장군직을 내려주었다. 그런 설계두가 왜 『삼국사기』 열전에 그것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열전 7권에 입전된 것인지, 그 의문을 풀어보고자 하였다.
검토의 결과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과 같은 중국측의 사서에는 645년 당군과 고구려군의 주필산 전투에서 몇 가지 누락된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더러는 과장된 것도 있었다. 645년 당군이 안시에 도착하자 고구려는 15만 명의 지원군을 보냈다. 고구려군의 군진이 40리에 걸쳐 있는 것을 본 당 태종은 두려운 기색을 보였다. 당시 두려운 기색을 보인 당 태종의 반응과 그리고 주필산 전투에서 당 태종이 지휘하던 6군이 고구려군에게 제압되어 위험에 빠졌을때 설계두가 적진 깊숙이 들어가 싸우다 죽었고, 그에 대하여 당 태종이 고마워하였으며, 직접 御衣를 벗어 설계두를 덮어주고 대장군 직을 내려주었던 일들이 누락되어 있다. 해당 내용은 『삼국사기』 열전에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비록 주필산 전투가 당의 승리로 종결되었지만 공명심이 강한 당 태종에게는 고구려군을 두려워하고 제압당했다는 것은 치욕이었다. 또한 고구려군에게 유린당한 당군의 전적 역시도 용납하기 어려운 치욕이었다. 그러한 치욕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주필산 전투에서 당 태종과 당군에게 불리한 정보들은 회피하였다. 그로 인해 설계두가 위험에 빠진 당 태종을 구하는 과정에서 전사했던 사실조차도 중국의 역사서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으로 이해하였다.
『삼국사기』 찬자들은 설계두의 충절과 용맹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자국사에 어두운 고려의 지식인들이 기억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삼국사기』 열전 속에서 설계두의 행적이 기록되고 회자되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당 태종의 실패했던 고구려 원정을 자연스레 소환되게 하였다. 결국 『삼국사기』 열전 7권에 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설계두를 배치함으로써 당 태종의 무모한 정복욕과 공명심을 비판하였다. 이는 또한 당 태종의 패배를 直書하지 않은 중국 측의 서술 태도를 비판하고 중국의 비겁함을 꾸짖는 『삼국사기』 찬자의 역사 의식이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삼국사기』 열전의 인물과 그 유형
Ⅲ. 신라인 설계두의 포부와 행적
Ⅳ. 주필산 전사자 설계두의 입전 의도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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