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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소영 (원광대학교 사학과)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인문학연구원(구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 인문과학 제88호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101 - 13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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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영국의 대응과 그에따른 당시 영국의 조선 인식을 살펴보는 데 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이발생한 시점은 프랑스 선교사 살해로 인한 프랑스의 조선 원정이 예정되어 있던 시점으로, 당시 조선 문제에 관한 주도권은 프랑스에게 주어져있었다. 그러나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발생하면서 영국과 미국은 조선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에 사건 초기 영국은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조선 개항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1867년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조선과의 접촉을 시도한 것과는 달리 영국은 1866년 12월을 기점으로 제너럴셔먼호 사건의 해결에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영국의 이러한 태도는 프랑스의 청에 대한압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프랑스는 조선 원정을 실행하기 전부터 청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조선 원정의 실패로 외교적 수세에 몰린 이후부터는조선 문제를 빌미로 본격적으로 청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자 영국은 청 제국의 해체를 주장하는 프랑스의 태도에 반대해 청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던 조선 문제를 관망하기로 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조선을 개항시켜 얻을 수 있는 무역 이익이 청 정부를 보존해 얻을 수 있는무역 이익보다 크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영국의 이 같은 입장은1860년대 말까지도 지속되었다. 이렇듯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영국의 소극적인 대응은 프랑스와조선의 분쟁, 프랑스와 청의 갈등에서 기인한 것으로, 1860년대 후반 영국의 대조선 정책의 향방은 영국의 무역 이익 보존, 즉 경제적인 목적을기준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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