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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진정환 (국립중앙박물관)
저널정보
보조사상연구원 보조사상 보조사상 제65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03 - 13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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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홍성 용봉산에 있는 용봉리 마애불과 신경리 마애불의 조성 시기와 그 배경을 재검토한 논문이다. 삼국시대 내포지역에는 백제의 사찰과 마애불 등이 조성되었으나, 아직 홍성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내포지역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주목할만한 불교미술품이 홍성지역에 조성된다. 이 논문에서 龍鳳寺 貞元 15年(799년)銘 磨崖佛로 신라 중대에서 하대로 변모하는 과도기적 양상과 함께 발원자와 장인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와 함께 8세기, 후삼국기, 10세기 등 조성 시기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었던 新耕里 磨崖佛에 대한 조형적 특징을 바탕으로 조성 시기와 배경을 검토하였다. 용봉사 정원 15년명 마애불은 신라가 중대에서 하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국가적 차원의 불교 확산의 근거로 인식되었으나, 실제로는 私的 불사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이유로 장인의 수급이 어려워 僧匠이 불상을 제작하면서 조형성이 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경리 마애불은 고려전기 석불의 양식과 비교해볼 때, 11세기 2분기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시기는 거란의 침입 직후로 혼란기였는데, 홍주의 호장층이 흔들리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홍주의 읍민이 거국적으로 참여하는 불사의 하나로 신경리 마애불을 조성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읍기가 아닌 용봉산 중턱에 신경리 마애불을 조성한 이유는 용봉산의 과도한 지세를 보완하기 위한 裨補寺塔說에 근거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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