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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은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91호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41 - 78 (38page)
DOI
10.17647/jss.2023.05.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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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청조 후기 북경에서 만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주요 특징을 네 가지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청조의 사료와 조선 사신들이 남긴 연행록을 비교 분석하여 청조가 만주족으로서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한 실상과 그 특성을 파악하는데 의의를 두었다.
첫째, 청조를 건설하는데 군사적 토대가 된 팔기의 旗人을 북경 내성을 분할하여 거주하게 하고 기존 한인을 외성으로 축출하여 分城 정책을 추진하였다. 분성정책의 추진은 만주족과 몽고족을 황성 가까이 거주하게 하여 황실의 안위를 도모하는 한편, 다수의 한족으로부터 분리시켜 갈등을 완화하고 만주족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였다. 또한 입관 후부터 청의 역대 황제들은 종실 및 특히 한군 기인의 滿語와 騎射의 쇠락, 漢書에 편향된 학습으로 한족 문화에 동화하는 경향을 경계하였다.
둘째, 황실에서 시행한 堂子 제사는 만주족 특유의 샤머니즘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 사신들은 정월 초하루 조회 대전에 앞서 만주족 百官을 대동하여 당자를 왕래하는 청 황제의 어가 행렬을 맞아 祗送하거나 祗迎하였는데, 당자제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자제사 중 조선인들의 관심사는 尚錫神亭(上神殿)에 봉안한 신으로, 대부분 명나라 장수 鄧佐나 劉綎의 사당으로 인식하였으나 청 사료에 의하면 명나라 부총병 鄧子龍의 사당으로 누르하치와의 舊誼를 위해 청 황실의 당자에 그의 사당을 세운 것이었다.
셋째, 북경의 南苑은 南海子로 더 잘 알려졌는데, 요·금·원·명·청대까지 황제의 御苑이었다. 이곳은 강희연간부터 승덕의 피서산장에 조성한 목란위장이 설립된 후에도 황제가 閱兵 의식과 사냥을 통해 팔기군에게 騎射와 尙武 정신을 고취시키던 곳이자 황가의 말을 관리하는 곳이었지만, 상대적으로 학계에 조명받지 못하였다.
넷째, 태액지에서 동지를 즈음하여 열리던 冰嬉는 요동 太子河에서의 빙상경기를 계승하여 건륭연간 大典으로 격상되어 북경의 서북쪽 태액지 남해에서 펼쳐져 청조 만주족의 유풍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연희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네 가지 특징은 청이 북경으로 천도하면서부터 청의 만주족 문화가 한족 문화에 동화되거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경계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산물이었으나, 그마저도 19세기 후반에는 쇠퇴하고 만다.

목차

Ⅰ. 머리말
Ⅱ. 八旗의 分城 거주와 만주족 풍속
Ⅲ. 堂子와 坤寧宮의 샤먼 祭祀
Ⅳ. 南苑의 閱兵儀式과 春蒐
Ⅴ. 太液池의 冰嬉大典
Ⅵ.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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