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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심 (가천대학교)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1권 제51호
발행연도
2014.8
수록면
51 - 7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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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2006년 조사된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의 고고학적 특징을 간단히 살펴본 후 문헌자료와 접목시켜 고분 축조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수혈식 석곽의 단독 분구에서 일상적인 토기는 배제된 채 금동관과 금동신발, 왜계의 갑주 등이 출토된 점이 안동고분에서 주목되는 고고학적 특징이었다. 별다른 문화적 기반이 없었던 고흥지역에 5세기 중·후반 백제의 최상위의 위세품인 금동관이 부장된 고분이 단독분 형태로 축조되었던 배경은 백제의 대왜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아신왕대 왜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었던 백제는 5세기 전·중반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처하여 다각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왜와의 우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왕자와 왕제 등 왕족을 자주 파견하고 사신의 왕래가 잦아진 상황에서, 백제가 왜에 이르는 안전한 항로를 확보하고 또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寄港處의 세력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안동고분이 축조된 지역은 백제에서 가야 - 왜로 이어지는 연안항로의 중간 기항지였기 때문에 왜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안동고분 피장자에게 백제 중앙에서 포상의 의미로 금동관·금동신발 등의 위세품을 내려주었을 것이다. 이들은 교역 내지 해상활동을 통해서, 왕족의 원활한 일본 왕래에 공헌한 데 대해 보상을 받음으로써 富를 축적하고 세력을 키울 수는 있었을 것이나, 재지의 유력 수장층으로서 오래 존속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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