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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중 (경기도자박물관)
저널정보
(사)한국문화유산협회 야외고고학 야외고고학 제15호
발행연도
2012.11
수록면
243 - 265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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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관요는 16세기 전반에 도마리나 열미리, 학동리에 설치·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나 운영시기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최근에 16세기에 운영된 것으로알려진 무갑리 14호와 곤지암리 1호 가마터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와 관음리 10호 가마터 수습유물, 그리고 번천리 9호 가마터에서 수습된 묘지명의 재해석을 통해 1530년대 후반 이후의 관요 이설경로와 운영시기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1530년대 후반부터 1540년대 초까지 운영된 우산리 9호 가마 일원을 시작으로 무갑리 14호 일원(1540년대 중반~1551년), 번천리 9호 일원(1552~1558년)으로 이설되고, 이후 관음리 10호 일원(1559~1560년대 후반)에서 곤지암리 1호 일원(1570년 전후~1570년대 중반)으로, 그리고 대쌍령리 1호 일원(1570년대 후반~1580년대 초),무갑리 10호 일원(1580년대 중반~1590년대 초) 정지리 3호 일원(1590년대 중반~) 순으로 관요가 이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특히 1560년대 후반까지 운영된 것으로 판단되는 관음리 10호 가마터에서 ‘地’銘이‘左’·‘右’銘과 함께 수습되어, ‘左’·‘右’銘백자가 1560년대부터 제작되었음을 확인한점과 경복궁 함화당지 출토 백자 중에 굽 안바닥에 ‘左’가 음각되고 ‘地’가 정각된 것이수습되어 이들 명문이 일정기간 공존하였음을 확인한 점은 성과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영청지나 종묘 등지에서 ‘宇’銘이 음각된 백자편이 출토된 점으로 볼 때 ‘天’·‘地’·‘玄’·‘黃’銘 외에 다른 글자가 음각된 백자가 관요에서 생산되고 있었음을 알 수있다. 그리고 발굴조사된 16~17세기 관요 자료를 토대로 16세기는 가마 2기 이상이인접해서 양질백자와 조질백자로 나누어 생산하였으나 17세기에는 1기의 가마가 양질백자와 조질백자를 필요에 따라 같이 생산하였음을 가마의 배치를 통해 확인하였다.이처럼 이번 연구를 통해 16세기 중·후반 관요의 운영시기와 제작양상이 확인됨으로써 16~17세기 관요에서 생산된 백자의 기형과 가마 구조가 시간의 경과함에 따라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좀 더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관요백자와 지방백자의 비교를 통해 지방백자의 편년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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