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세종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호남학 호남문화연구 제51호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1 - 40 (4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세종은 재위(1418~1450) 시절, 예악문화의 황금기를 열었다. 곧, 예(禮)는 ⓛ 제사에 관한 길례(吉禮), ② 상사에 관한 흉례(凶禮), ③ 군사에 관한 군례(軍禮), ④ 인국의 외교에 관한 빈례(賓禮), ⑤ 왕실의 혼사와 국가 경사에 관한 가례(嘉禮) 등 오례의절(五禮儀節)에 따른 제도적 규범을 마련하였다. 악(樂)은 새 왕조의 무공(武功)과 문덕(文德)을 칭송하는 각종 제사음악, 조회음악, 회례음악, 연향음악 등을 재정비하여 하늘과 땅이 더불어 조화하는 균천(鈞天)의 시대를 열기에 충분했다.따라서 세종조 음악정비는 크게 초기?중기?후기로 나누어 살펴진다. 초기(1419~1428)와 중기(1429~1442)는 율관제정과 악기제작, 제사음악과 조회음악의 정비로, 아악의 기틀을 확립한 때라면, 후기(1443~1450)는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보태평, 정대업 등 향악곡 제작과 정간보 창안으로 이어지는 향악(鄕樂)을 새롭게 일신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종조 음악정비는 크게 아악과 향악 그리고 속악을 한 축으로 형성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데, 여기에서 아악정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율려신서(律呂新書)≫를 주목하였다. 왜냐하면 송나라 채원정(蔡元定, 1135~1198)에 의해 저술된≪율려신서≫는 1430년(세종12) 윤 12월 1일에 일단락 된 ≪아악보≫완성에 아악의 이론적 기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주제어 : 세종(世宗), ≪율려신서(律呂新書)≫, 아악(雅樂), 제사음악(祭祀音樂), 조회음악(朝會音樂), 경녕군(敬寧君)연구의 방법은 먼저 세종조 음악정비 과정을 살펴보고, 다음은 ≪율려신서≫의 유입배경과 ≪율려신서≫가 아악정비에 미친 영향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율려신서≫의 유입은 태종(太宗, 1367~1422)의 큰아들 경녕군(敬寧君, 諱 ?)이 1419년(세종1) 8월 명나라 사은사(謝恩使)로 갔다가 그 해 11월 18일에 『성리대전(性理大典)』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속에 ≪율려신서≫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율려신서≫는 1419년(세종1)에 유입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뒤 ≪율려신서≫은 경연(經筵)의 강학 교재로 채택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된 책인데, 특히 세종은 ≪율려신서≫의 음악이론에 심취되어 그 이치를 깊이 탐미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뿐만 아니라, 황종 율관제정, 아악기 제작을 비롯해 1430년(세종12) 윤 12월 1일에 완성된 제사와 조회≪아악보≫의 악조이론 정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