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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연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제33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37 - 66 (30page)
DOI
http://dx.doi.org/10.17090/kcwls.2016..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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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비파행도(琵琶行圖)’에 나타나는 기녀의 형상화와 의미를 다룬다. ‘비파행도’란 당나라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좌천된 심양(?陽)에서 비파를 연주하는 늙은 기녀를 만나 그녀가 장안에서 유명한 기녀였으나 버림받고 떠돌게 사연에 크게 공감하여 지은 장편서사시 「비파행」(816년)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회화작품들을 통칭한다. 「비파행」을 감상한 역대의 문인들은 대개 백거이의 입장 혹은 주자가 그랬듯이 백거이의 지나친 상심을 문제로 지적하였다. 한편 중국의 후대 희곡에서는 재자가인의 만남이라는 낭만적 운치를 강화하였고, 심양의 물가는 문학적 명소로 시각화되고 통속화되는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비파행의 문학사적 수용사는 ‘비파행도’의 제작에 연관된다. 원대에서도 비파행이 그려졌으나 문헌기록으로만 볼 수 있고, 명대(明代)의 비파행도들에서는 기녀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주로 그려졌고, 산수화 속에 비파행의 연주장면이 점철되어 가을날 물가의 운치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운용되었다. 조선시대 비파행도 제작은, 문학적 명소의 하나로, 특히 당인(唐寅)의 작품과 유사한 양태로 거듭 그려지며 시작되었다. 이때 가을 풍경 속 비파 타는 여인이 점철된 명대 비파행도 속에 퇴기는 아주 작게 그려질 뿐 미인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이후 조선왕실의 서화첩 『만고기관(萬古奇觀)』과 『예원합진(藝苑合珍)』에서 모두 ‘비파행도’를 수록하였는데 퇴기의 모습을 삭제시켰다. 이러한 조선시대 ‘비파행도’들은 「비파행」을 가을날 운치와 정치적 불운을 견디는 남성문인의 정신세계로 향유되도록 인도하고 있으며 백거이가 원작에서 제시한 여성의 문제는 삭제시키거나 지나친 애상(哀傷)의 문제를 최소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전근대기 회화작품이 다룬 여성의 불행은 한 여성의 특별한 사연으로 존중되기보다는 어떠한 범주로 일반화 혹은 객체화되었고, 대개 남성의 향유나 남성 문인들이 원하는 자기표현의 매체가 되었던 제 현상에 간략히 비교하자면, ‘비파행도’의 기녀도 그러한 양상의 하나로 시각화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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