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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종배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교육사학회 한국교육사학 한국교육사학 제34권 제3호
발행연도
2012.9
수록면
1 - 21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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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시대 성균관 문묘의 향사 위차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 특징과 교육적 시사점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논문에서는 특히 같은 시기의 중국(즉, 명 · 청)과의 비교를 통하여 문묘 향사 위차의 조선적 특징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논문에서 고찰한 바에 따르면, 먼저 대성전 전내 향사 위차의 경우, 숙종 40년(1714)에 송조6현을 전내로 승사한 것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중국의 경우, 명 말기에 송조6현이 ‘선유’에서 ‘선현’으로 승격되고, 청대에 가서 주희가 전내로 승사되었는데, 이와 비교해 볼 때 송조6현의 일괄적 전내 승사는 조선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파격적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동 · 서 양무 종사 위차의 경우, 중국에서는 명대에 육구연과 왕수인으로 대표되는 심학 계열 학자들이 문묘에 종사되었으나 조선에서는 이들을 종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많은 명 · 청 시기 학자들을 추가로 문묘에 종사하였으나, 조선의 문묘에는 송의 진덕수와 원의 허형 이후 어떤 후대의 중국 학자도 종사되지 않고, 정몽주와 조선의 학자들만 추가로 종사되었다. 논문에서는 문묘 향사 위차상의 이러한 특징들을 통해 같은 시기 중국과는 달리 조선시대의 교육이 정 · 주 성리학 순일주의를 추구하는 가운데 공 · 맹의 유학과 정 · 주의 성리학을 순일하게 계승한 조선의 성리학을 통해 유학의 도통을 독자적으로 계승해 가고자 하였다는 점에 대해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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