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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병성 (광주보건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46호
발행연도
2012.5
수록면
67 - 9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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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 조선 수군은 칠천량 패전으로 와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제사에 복귀한 이순신은 수군 복구책을 시급하게 추진하게 되었다. 그는 수군 폐지를 반대하고, 전남 보성에서 복구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이순신의 수군 복구책에 따라 막하들의 복귀와 합류를 촉구하고, 병선을 수습하였다. 특히 진도의 벽파진 등으로 군영을 옮긴 8월말 경에는 흩어진 수군이 합류하고, 각지에서 의병막하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 의병막하들은 현직 막하들과 함께 이순신이 수군 복구를 추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들은 주로 사림가문들로 병선을 수습하고 후원하였으며, 의병들은 일정한 훈련을 거쳐 수군에 충당되었다. 따라서 고금도 시기에는 수군이 8천여 명에 이르러 한산도와 같은 규모로 복구되었다. 그 결과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노량을 끝으로 전쟁을 종식시키게 되었다. 그런데 이순신의 수군 복구는 의병들의 육지 방어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그가 수군 복구를 추진하기 위한 안전지대 확보가 절실하게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의병활동이 고흥?보성 지역 등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영암지역의 의병활동도 그의 전략에 따른 것이었으며, 명군과 연합하여 전개한 순천전투에서도 크게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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