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윤희 (국립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국립고궁박물관 고궁문화 고궁문화 제14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115 - 141 (2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선 궁궐의 정전正殿마다 어좌를 장엄한 당가唐家 구조물의 형태는 다르지 않으나 당가의 벽면을 장식한 일월오봉도 병풍의 형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창덕궁 인정전의 경우가 가장 독특한데, 당가의 벽면 상단에는 4첩의 오봉도 병풍이 올려 있고 하단은 네 마리의 동물 문양을 그린 사령도四靈圖 장식판이 설치되어 있다. 본 논고에서는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창덕궁 인정전 당가의변천 이력에 대하여 의궤와 사진, 기록물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창덕궁 인정전 당가의 변형은 고종을 대신해 황제로 즉위한 순종(재위: 1907~1910년) 이 경운궁에서창덕궁으로 이어한 후, 1908년 있었던 대대적인 궁궐 수리공사 때 이루어졌다. 궁궐 안의 공사는궁내부 차관 고미야 미호마쓰小宮三保松, 1859~1935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다. 인정전 당가는 지붕의 상부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좌탑座榻을 들어내어 어좌의 높이를 낮췄다. 그리고 당가 벽면의 구조를 일본식 창호 구조로 바꾸고, 앞면을 장식했던 일월오봉도를 대신해, 일본 천황의 어좌를 장식하던 봉황과 서수 문양의 그림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그들은 당가를 조선 전통 방식에서 일본 황실 풍으로 바꿔 조선 왕실을 일본 황족에 준하는 대우를 하는 것처럼 보이고자 하였으며, 이러한이미지를 담은 사진첩과 관광엽서 등을 제작해 홍보함으로써 일본의 조선 지배를 대내외에 표방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궁궐건축물은 1961년 문화재관리국이 설립되고, 궁궐 전각들을 하나씩보수하면서 창덕궁 인정전도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당가에 있던 일본풍의 봉황그림을 일월오봉도로 교체하고, 조선시대 어좌의 권위 있는 모습을 되살렸다. 그러나 대형의 일월오봉병과 좌탑등 주요 부재들이 소실된 상태였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을 완벽하게 찾지 못했다. 궁궐 고건축에대한 고증과 문화재 보수 기술력이 지금에 비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창덕궁 인정전 당가의 모습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현대사를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의 산물이라 하겠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