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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용철 (단국대학교(천안캠퍼스) 북방문화연구소)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104호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173 - 20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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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원대 후기부터 북원 시기까지의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카라장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살펴보았다. 『원사』 등을 포함한 기록을 보면, 원대 후기에는 카라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러 명의 인물들이 보이는데 정치적 행적의 측면에서 주목할 수 있는 2명의 카라장을 조금 더 상세하게 검토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원대 후기의 중서우승상 톡토의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궁정의 핵심부에서 생활하다가 톡토의 폄출로 인해 좌천되었고, 이후 톡토에게 죄가 없음을 혜종이 인정하면서 조정으로 소환되었다. 그 후 중서성의 평장정사로 임명되어 大同에서 分省의 업무를 담당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나 이후의 행적은 확인하기 어렵다. 또 다른 카라장은 지추밀원사에 임명된 케식장 카라장으로, 이 인물이 북원 시기에 명과의 대립에서 주체적으로 활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톡토의 아들이 아닌 또 다른 카라장이 존재했으며 이 인물이 북원의 중추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재검토해야 한다. 지추밀원사 카라장은 혜종을 호위하여 대도를 탈출하였고, 북원의 중추 신료가 되면서 그 지위가 상승하였다. 1370년대 초부터는 요동 및 몽골 일대를 근거지로 세력을 형성하여 명과의 전투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홍무제 주원장도 카라장이 북원의 핵심 신료이자 장수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1378년까지의 북원 정국은 아유시리다라 카안을 중심으로 명과 팽팽한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이었고, 카라장은 북원의 힘이 유지되는 데에 있어서 한 축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378년에 아유시리다라가 사망한 이후부터 북원 내부의 단합이 점점 와해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1380년대에 접어들면 명이 더욱 공격적으로 북원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결국 북원의 핵심 군벌 중 한 사람이었던 나가추가 1387년에 명에 투항하는 등 북원은 점점 수세에 처하게 되었고, 카라장도 명의 군대에게 쫓겨 카라코룸까지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1388년에 명의 장군 남옥에게 본거지를 습격당하면서 카라장의 세력은 거의 상실되었고, 카라장의 아들 및 조카 등이 명에 투항하게 된다. 1388년의 전투 이후 카라장의 행적은 확인할 수가 없다. 카라장은 1388년 북원의 멸망과 함께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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