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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걸순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48호
발행연도
2018.9
수록면
179 - 224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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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충북 영동지역에서 전개된 민족운동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연구방법은 한말의 국권회복운동과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독립운동의 전개 양상을 계열별로 정리하여 운동사적 흐름을 파악하고 그 특징을 파악하는데 주안을 두었다. 한말 국권회복운동으로서 후기의병이 도내에서 가장 늦은 시기까지 격렬히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나, 계몽운동은 그리 활발하지도 못하였고 민족운동으로서의 성격도 약했다. 3·1운동 당시 영동에서는 5회의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학산면 서산주재소와 영동읍에서 일본군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영동 출신 독립유공자 62명 중 37명(60%)이 3·1운동 계열임은 영동지역의 대표적 민족운동이 3·1운동이었음을 입증한다. 3·1운동 직후 영동에서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갈등이 노정되고, 이러한계급과 이념의 대립이 민족운동에 민감하게 반영됨은 인근 지역과 대비되는영동지역 민족운동의 가장 특징적 양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영동청년회, 영동소작인상조회, 칠월회, 영동청년연맹, 영동청년동맹 등은 이를 견인한 단체였고, ‘영동청년회사건’(1927)과 ‘적색영동농민조합사건’(1932)은 사상운동에 대한 일제의 극심한 탄압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연구를 통해 영동지역 민족운동의 실상이 정리되고, 몇 가지 특징적 양상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운동 주도 계층의 사회경제적 실태와 운동계열간 연계 파악은 미진하다. 특히 영동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공산주의 사상수용에 적극적이었고 전국적으로 주목되는 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던 요인 규명은 향후 주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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