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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태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87호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75 - 122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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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관한 서술 중에는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리는 사례가 자주 목격된다. 오랜 평화에 안주해 있었던 데다가 당파 간의 갈등이 심하여, 전쟁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서사는 익숙하다. 그런데 국왕이 술과 여자에 빠져 있었고, 정부 내에는 간신과 아첨하는 이들이 가득했다는 극단적인 표현도 존재했다. 과연 이러한 역사상(歷史像)은 실재했을까.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스스로 반성하는 문구를 남긴 경우가 있었다. 전쟁 기간 중 명과 조선 사이에서 논쟁이 발생하자, 명측 인사의 발언과 외교문서에서는 강한 비난 표현이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문구들은 항상 정치적인 배경과 함께 해석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 이후 명에서 만들어진 임진왜란 관련 문헌에서는 맥락을 제거한 채, 비난의 표현만을 남겼다. 전쟁 후 조선의 문헌에는 자기반성을 위한 레토릭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특정한 인물을 부각하기 위해 상대되는 인물을 비판적으로 서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문헌에서 국왕과 왕조를 직접 비난하는 서술은 존재할 수 없었다. 두 나라의 문헌은 일본에 전해졌다. 일본에서는 대중 지향의 출판이 유행하면서, 강렬한 요소만을 뽑아 흥미 위주의 임진왜란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근대에 접어들면서, 기노시타 사네히로와 하야시 다이스케는 시대적인 맥락과 공간적인 맥락을 없애고,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뽑아낸 후 재조합하여 “게으르고 방탕한” 조선상을 만들어냈다. 그에 더하여, 개항 이후 조선에서 수집한 조선 사료의 목록을 추가하여 자신의 조합을 더 화려하게 꾸몄다. 기노시타와 하야시의 저작은 이 흐름의 정점이었다. 그리고 이들 저작은 후대 학계에 큰 영향을 주어 오랜 기간 부정적인 조선 이미지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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