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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주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동서인문 동서인문 제20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193 - 22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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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군은 압독국의 고지에 설치된 신라의 행정구역이다. 압독국은 신라와 拮抗하는 모습으로 처음 문헌에 등장하며, 병합된 이후 郡으로 편입되었다. 장산군의 지정학적 위치는 왕경 방어를 위한 최후의 보루였던 것 같다. 大耶城 함락이란 범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선 下州의 治所를 이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김유신을 軍主로 임명하였다. 그는 거병에 앞서 지역의 민심을 살피기 위해 술로 하세월을 하였다. 민심을 규합하기 위해서는 지역 유지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아마 김유신은 그 무렵 원효 가문과 인연을 맺었던 것 같다. 원효 가문은 이례적으로 5대가 복원되며, 조부인 잉피공을 위한 사당도 존재하였다. 원효는 김유신의 고구려 원정 과정에서 종군한 인상을 준다. 특히 그가 서당화상으로 불린 것을 미루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의 암호 해독으로 신라군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김유신과의 유대는 瑤石宮의 寡公主와 혼인할 때 도움을 준 것 같다. 왕실 구성원과의 혼인이 그저 개인의 명성으로 성사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한편 장산군은 예하 행정구역 명칭을 작명하는데 금호강의 물길이 크게 관여한 듯 하며, 解顏縣은 물자유통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금호강 일대의 물적기반은 왕경을 지탱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울러 장산은 고대 경산을 상징하는 地勢였다. 장산성은 행정 치소와는 별개로 設險 곧 요새를 쌓아 방어거점을 구축한 것이었다. 대야성 함락시 행정 치소의 이동, 장산성의 축성 등은 왕경 서쪽 방어라는 장산군의 위상을 대변한다. 장산성 축성의 반대급부로 책임자 김인문은 인근 식읍 300호를 사여받았다. 식읍은 한 개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된 領地이다. 최근 대구 八莒山城에서 출토된 목간에 보이는 私가 私屬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촌락 경영을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끝으로 신라의 중악인 팔공산은 중사의 제장이자, 장산군의 관할이었다. 이점 장산군의 호국적 위상과 부합하며, 이러한 공간적 중요성은 김유신, 김인문 등 중대 왕실과 밀접한 인물들이 파견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압량주의 설치와 김유신의 활동
3. 압독군의 행정구역과 금호강
4. 통일기 장산군의 위상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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