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혁은 (역사문제연구소)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47호
발행연도
2022.9
수록면
201 - 236 (36page)
DOI
10.31218/TRKH.2022.9.147.20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1961년 초 장면 정부가 실시한 군 시위 진압 훈련의 배경과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5·16쿠데타 이후의 수도방위사령부 창설이 군의 시위 진압 구조에 미친 영향을 검토한 연구이다. 본고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5·16쿠데타 세력이 이용하려 했던 시위 진압 훈련은 장면 정부와 주한미컨트리팀, 유엔군사령부가 공동으로 주관한 경찰-군 시위 진압 훈련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한국 현지에 주재한 미 기관들은 장면 정부의 통일운동 대응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그럼으로써 ‘3·4월 위기설’의 확대재생산에도 연관되었다. 장면 정부가 겪은 위기는 최초에는 자초한 측면이 컸으며, 미국 역시 거기에 깊숙이 관련되었다는 것이 본고의 주장이다.
둘째로, 당시 실시된 시위 진압 훈련의 내용에는 5·16쿠데타 이전 군의 시위 진압 구조가 반영되며, 훈련 내용의 검토를 통해 5·16쿠데타 이후 수도방위사령부 창설이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5·16쿠데타 이전까지 대규모 시위 진압을 위해서는 야전 사단을 동원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5·16쿠데타 이후 서울 근교에 위치하고 경비 임무를 지녔던 제30·33예비사단, 제1공수전투단이 유엔군사령관의 작전통제권에서 벗어났으며, 동 부대를 모체로 수도방위사령부가 창설됨으로써 박정희 정부는 역쿠데타 방지뿐만 아니라 시위 진압 작전을 위한 부대운용에 상당한 재량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1961년 초 ‘3·4월 위기설’의 의미와 군 시위 진압 훈련의 배경
Ⅱ. 5·16쿠데타 이후 수도방위사령부 창설과 군 시위 진압 구조의 재편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3-911-000127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