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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연구원 [Jthink] 전북학연구센터-전북학연구 전북학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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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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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백제부흥운동기(660년 7월∼663년 9월) 전북 지역이 어떠한 역할을 차지하였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관련된 지명들의 위치 비정과 의미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백제 부흥운동 기간 동안 충남·대전권 20개(53%), 전북권 12개(32%), 전남 3개(8%), 경남 2개(5%), 제주 1개(2%)의 지명을 확인하였고, 특히 부흥운동의 중심지가 사비(부여)와 웅진(공주) 등 충남·대전권에서 두량이(완주), 고사성(정읍), 주류성(부안), 피성(김제), 금마(익산) 등의 전북권으로 이동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전북 지역이 백제에서 중요한 위상과 위치를 갖는 것은 백제와의 연관 때문이다. 4세기에 이르러 비리(군산)·벽중(김제)·포미·지반(부안)·고사(정읍)와 의류촌(주류수지=주류성) 등이 백제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되는데 백제는 이를 ‘국가의 기틀이 영원히 단단해졌다’고 표현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처럼 전북권이 백제의 중요 지역으로 부각되었고, 이후 웅진과 사비시대에 백제 5방 체제가 확립되면서 국토의 한 가운데에 설치되었다는 중앙으로서의 ‘중방’이란 의미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백제라는 국가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흥세력은 좀 더 안전한 중심 근거지가 필요하였다. 그런데 이미 사비 및 웅진 등은 전쟁의 앞마당이었기에 나·당군의 침략이 비켜간 금마저(익산)나 중방 고사성 등이 주목될 수 밖에 없었다. 또 부흥전쟁을 위한 식량 확보 등도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백제 중방 지역 즉, 전북은 삼한에서 가장 기름진 곳으로서 ‘衣食의 근원’이었다. 따라서 백제 부흥운동에서 전북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역사적·경제적·지리적인 모든 측면에서 부흥국 수립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였다.

목차

1. 머리말
2. 백제 부흥운동 관련 지명의 분석
3. 백제와 전북지역의 관계 변화
4. 부흥백제국 수립과 전북지역의 역할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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