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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국제.지역연구 국제지역연구 제15권 제1호 2006 봄
발행연도
2006.3
수록면
95 - 12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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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예멘의 통일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였다. 우선 힘(power)이라는 국제정치학의 중요개념을 분석의 축으로 하여 통일과 국력과의 상관성을 연구하고, 국내·국제적 힘의 관계에 따라 북예멘과 남예멘의 통일정책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살펴보았다. 또한 이러한 통일정책의 결과, 통일을 이룩한 예멘의 통일과정을 통합이론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았다. 예멘의 경우를 보면 북예멘을 지원하는 사우디와 서방진영, 남예멘을 지원하는 소련 등 공산진영 간의 대립이 계속되고, 한편으로 그 지원이 활발했을 때 남북예멘 두 체제는 팽팽한 대치상태를 지속했다. 대치상태는 아랍연맹의 중재를 가져왔고 이것이 통일의 단초가 되었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그러한 상태에서 소련의 남예멘에 대한 지원 중단으로 남예멘을 지탱하던 힘의 한 축이 무너졌다. 마침 국경지대의 유전을 남북예멘 공히 개발할 필요를 느낀 것이 통일을 촉진시킨 매개였다. 그래서 체제 위기에 봉착한 남예멘은 본격적인 통일논의에 임했다. 그리하여 독일만큼의 힘 격차가 나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우세했던 북예멘의 주도로 합의식 통일을 이루었다. 그들의 사회 다방면에 걸친 교류는 통합을 위해 의도적으로 추진된 일련의 정치회담 결과였다. 이 정치적 교류들이 역시 증가적 결정작성(incremental decision making)을 가져와 마침내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는 결과적으로는 신기능주의적으로, 과정상으로는 다원주의와 연방주의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예멘의 통일 때 두 국가 간의 힘의 격차는 독일만큼 크지 않았다. 더구나 병력수에 있어서는 전체적으로 힘이 열세였던 남예멘이 오히려 많았다. 이는 통일 후 남예멘의 불만이 많이 쌓였을 경우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결국 남북예멘은 내전을 겪었고 힘의 우위였던 북예멘에 의해 재통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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