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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성우 (삼육대학교)
저널정보
민족어문학회 어문논집 어문논집 제45호
발행연도
2002.1
수록면
8 - 220 (21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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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금까지의 한국 시사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월 최승구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면서 근대 자유시 형성기의 한 특질을 밝히려는 시도이다. 최승구는 1910년대 중반 현상윤, 김여제 등의 경우처럼 근대 자유시 형성의 한 부분을 담당했던 시인이다. 비록 최승구가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공식 발표 작품 역시 극히 한정되어 있으나, 그의 유고 작품들은 당시의 시적 수준에 비겨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승구는 일본 유학 등을 통해 근대 의식을 익히면서 외래 문학적 요소들을 자신의 작품에 주체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그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작품에 내면화하는 시적 성과를 보여 주었다. 이는 당시의 많은 시인들이 직설적인 어법의 작품을 양산하고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매우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유소년기에 익힌 한문 문체와 당시 새로 대두한 국한문체 사이의 이중성을 모국어에 대한 자각을 통해 스스로 극복해 나갔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실제로 그의 시편들은 전통적인 한시를 방불할 만큼의 한문 문체 위주로 쓴 작품들과 그 당시로서는 두드러질 만큼 우리말 어휘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들로 대별된다. 가령, 「海已醒」이나 「夜色長」의 경우에는 한문 어조사 '矣'와 함께 '술어+목적어' 구조의 한문 문장을 그대로 사용했을 정도이며, 문장의 종결 어미도 '-이라', '-로다', '-도다'처럼 예스런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鍾」과 「潮에 蝶」에서는 거의 완전한 국문 문체로 이루어진 묘사구와 서술어는 물론 부사어, 의태어 등이 활발히 사용되면서 기존의 정형화된 율격의 구속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벗어나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주목할 것은 최승구 시의 이러한 특성이 개인적 성향의 문제나 한자 어휘의 사용 빈도라는 통계적 차원의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대두하기 시작한 국한문체와 그것에 바탕을 둔 모국어 사용은 근대 자유시의 형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최승구 시의 전개 양상을 살피면서 우리는 그의 시에 내재된 특질과 근대 자유시 형성기에 있어서 모국어 사용의 의의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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