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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병남 (국가기록원)
저널정보
한국상고사학회 한국상고사학보 한국상고사학보 제52권 제52호
발행연도
2006.1
수록면
5 - 23 (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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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성왕의 북진(551) 이전부터 한강 유역과 관련된 여러 지명들이 나타나는 바, 성왕 즉위년(523)의 ‘패수(예성강)’, 성왕 7년(529)의 혈성(강화도)과 왕봉현달을성현(경기도 고양), 성왕 18년(540)의 우산성(황해도 금천군 우봉면), 성왕 26년(548)의 독산성(경기도 포천) 등 한강 유역 일대를 둘러싸고 백제와 고구려가 공방을 벌인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이들 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 시켜줌과 동시에 성왕 초기에 이미 한강 이북 지역을 백제가 점유하였던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하지만 성왕(523~554) 시기의 북방 영역은 전대인 동성왕(479~501)~무령왕(501~523) 시기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모습을 보인다. 왜냐하면 이 시기 고구려가 혈성과 왕봉달을성현을 빼앗고, 독산성을 공격하는 등 한강 이북 지역에 근접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가 패수나 오곡(황해도 서흥) 등 한강 이북을 넘어 공격한 것은, 백제의 고구려 공격이 한강 넘어 상당히 깊게 진행되었음을 뜻하며, 달리 표현하면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선이 예성강 이남~한강 이북 사이에서 유동적으로 유지되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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