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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근영 (순천향대)
저널정보
중앙대학교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 다문화콘텐츠연구 다문화콘텐츠연구 제38집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177 - 196 (20page)
DOI
10.15400/mccs.2021.12.3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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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근세와 근대의 틈 속에서 요동치던 가설 거리에 주목하였다. 이 가설 거리를 메우던 전통적 대중오락 미세모노(見世物)의 흥행과 변화 양상을 통해 메이지 전후 일상을 파고든 근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오사카부 센니치마에는 묘지와 형장(刑場), 화장장을 중심으로 하는 사원 마을(寺町)이였고, 나가마치는 싸구려 여인숙과 빈약한 나가야(長屋)가 밀집한 오사카 최대의 슬럼가였다. 이계(異界)라는 표현이 합당할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묘지거리 센니치마에는 커다란 변모를 보인다. 개화의 기치 아래 사회 시스템 전반에 이르는 개혁의 파도가 이 사촌에도 밀어닥쳤다. 철거지 이용법을 고심하던 오사카부는 인접한 미조노가와 미세모노 극장을 주목했다. 가설흥행을 유치하는 것으로 묘지터 재개발을 도모한다는 방침이 책정되었다. 사사경내나 시가지 주변에 산재하던 미세모노 극장이 1873년 법령으로 한꺼번에 센니치마에로 이전했고, 그 번성에 맞춰 개천 쪽에서도 약장사들이 이전해 왔다. 오사카부가 센니치마에 재개발을 목적으로 개천 쪽으로 흥행을 이전시킨 것이 아니라, 시가지의 악소 이전・정비정책, 센니치마에 번영책이 거의 우연히 연계된 결과 센니치마에 재개발이 달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센니치마에의 흥행을 대표할 만한 흥행사는 오사카 단바(丹波) 출신의 오쿠다 벤지로(奧田弁次郞)이다. 그는 ‘일본 챠리네 곡마단’을 창립자이자 일본 서커스의 근대화를 앞당긴 인물이다. 오쿠다 벤지로는 센니치마에의 토지 일부를 사서 미세모노 극장을 시작하고 곧 흥행사로서 솜씨를 발휘했다. 오쿠다의 행보는 당시 여러 미세모노단체들을 자극했다. 마스이(益井), 가키오카(柿岡), 에가와(江川) 등 서커스단체가 결성되었고, 일본 서커스계는 크게 비약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커스단을 ‘챠리네’라고 부를 정도로 이들은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1886년 10월 7일 대화재로 센니치스지 양편에 늘어선 미세모노 극장 중 서편에 있던 큰 극장 2동, 중간 극장 6동을 전소되었다. 이를 계기로 가설극장에서 상설극장으로 이행하게 되었다. 대화재의 화염과 센니치마에 흥행내용의 변화는 여가의 지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목차

Abstract
1. 서론
2. 센니치마에(千日前)의 형성
3. 흥행사들의 활약과 서양 곡마(曲馬)
4. 화재·콜레라·극장거리
5.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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