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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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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백제연구 제53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31 - 157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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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의 시간적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자료를 접하는 연구자의 시각차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백제 토기의 출현, 한성 1기와 2기의 구분, 475년 한성 함락이란 역사적사건이 지닌 고고학적 의미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출현기 백제 토기는 전 기종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어서 고배, 삼족기, 꼭지달린 뚜껑은 존재하지 않았다. 직구호와 대형 호, 꼭지없는 뚜껑이 출현하고 원삼국기 이래의 유문타날 장란형토기와 심발형토기가 성행하는 점진적인 모습이 출현기의 실상이었을 것이다. 그 시점은 3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풍납토성 출토 시유도기와 전문도기의 연대관에 기초하고 있지만 4세기 초로 내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성 1기와 2기를 구분짓는 근거는 토기의 경도나 표면 처리방식이 될 수 없어서 한성 2기에도 다량의 연질, 와질의 토기류가 사용된 것이 백제 토기의 특징이다. 1기와 2기의 획기는 4세기 중엽이란 기존 통설이 여전히 유효한데 늦어도 360년대에는 유개고배류와 꼭지달린 뚜껑 등이 존재하였다. 그 출현시점은 분명치 않은데 한성 1기의 늦은 단계일 가능성이 높으며 유개고배는 4세기 이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몽촌토성 출토 스에키, 풍납토성 출토 가야 토기와 고구려 토기를 한성 함락인 475년 이후에 배치하는 것은 불가하며, 지방의 수장묘 출토 중국 도자기류는 약간의 전세 기간을 인정하더라도 연대 결정 기준으로서의 자료적 가치는 충분히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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