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백제연구 제51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103 - 142 (4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관북리 백제 유적은 사비기에 조성된 대규모의 성토대지를 경계로 크게 상하 두 개의 생활면으로 구분되며 이와 같은 대지조성 양상은 왕궁중심영역의 확대 내지는 재정비와 연관지어 해석되고 있다. 관북리 바지구 조사에서는 저습지를 메워 생활공간을 확대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저습지에 조성된 매축지의 끝에서 축대와 담장렬이 발견됨에 따라 이 지역을 왕궁의 북서편 경계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매축지내 1차 생활면 및 관련유구에서는 이 일대의 대지 조성시기에 대한 주요 편년자료로서 인식되고 있는 ‘꺾임반전형 수막새’가 다수 수습되어 주목되는데 동일 형식의 수막새가 일괄수습 되었다는 것은 이 일대의 대지 조성 작업이 일정한 시간적 범위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되나 수막새 문양형식을 이용한 기존의 편년 방법은 아직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 1차 성토 단계의 유구에서 수습된 중국 남조의 자기편이나 지지명 인장와의 연대로 미루어 볼 때 최초의 대지조성시점이 6세기 4/4분기 이상 올라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며 그 하한은 7세기 1/4분기 전반대로 비정된다. 바지구의 저습지 개발은 6세기 4/4분기경 이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성토공사의 일환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성토공사 이전의 바지구 일대는 거의 방치된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북리 일대 시설물들의 변화양상으로 미루어 볼 때 현 지역은 7세기 1/4분기 이후에야 본격적인 왕궁 영역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이러한 양상은 사료에서 확인되는 일련의 왕궁 재정비 모습과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