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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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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15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375 - 40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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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를 통해 광산김씨 예안파의 분재기에 나타나는 전답의 소재지와 면적, 전답 매매와 경영방식의 의미를 발견하고, 조선후기 전답의 소유양상변화와 비교한다. 15세기에는 거주지를 중심으로 전답이 예안에 집중되었고, 주로 상속에 의해 획득했다. 16세기에는 전답이 경상도 북부와 남부, 충청지역, 경기도까지 확장되었고, 상속뿐만 아니라 개간이나 매득 역시 전답을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전답의 면적은 점차 넓어졌는데, 예안의 전답은 대체로 30% 후반이었고 다른 지역도 대체로 늘어났다. 따라서 광산김씨 예안파는 처음에는 예안 중심으로 전답을 집중하였다가 가문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여러 명문 가문과 혼인관계를 맺어 다른 지역까지 전답을 넓혔으며, 개간이나 매득을 통해서도 전답을 획득하였다. 17세기부터 예안 중심으로 전답이 다시 집중되었고, 이 지역 내에서 많은 전답을 확보하였다. 전답이 자신의 거주지 내로 집중된 이유는 첫째 대부분 중앙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전답을 소유할 수 없었다. 둘째 재산의 평균분급이 사라지고 장자에게 재산이 집중되었다. 셋째 영남의 사족들은 중앙으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큰 힘을 가질 수 없었다. 이 연구를 통해 이 가문의 사회적ㆍ경제적 지위를 일부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가문들의 분재기와 전답매매명문을 같이 분석하여 전답에 대한 여러 실상을 밝힌다면 사족의 경제적인 한 면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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