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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15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43 - 96 (5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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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안동 풍산 출신의 두 知友가 철종대에 노론 세도가 金洙根을 제향하는 西湖書院을 안동에 건립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겪은 일을 통하여 당시인의 정치적 일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주목한 것이다. 자료는 풍산 오미동의 金重休가 친구인 하회 출신의 柳祈穆의 행적을 비판하기 위해 쓴 『乙卯淸議辨』을 주로 활용했다. 류기목은 남인이면서도 노론계인 김수근의 서원을 안동에 건립하는 것을 주도했고, 서원 건립이 지역사림의 반발로 무산되자 철종 9년 김수근의 아우인 永恩君 金汶根을 영정을 언양에 봉안하는 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이듬해에는 김수근의 위판을 예안 雲溪書院에 배향하는 데에 지역 수령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더구나 그는 김수근 서원 건립을 자신이 주도하기 위해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들어 내면서 야심찬 행동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류기목의 행적은 당시 관료들의 정치적 일상을 행위적 차원에서 그 실상을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그의 행위 속에서 붕당과 가문이 어떻게 개인의 행동에 작용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활사 연구의 한 사례로서도 가치가 크다고 판단된다. 류기목의 이러한 행보는 안동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류기목이 노론계 서원 건립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병파와 호파의 保合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류기목과 『乙卯淸議辨』의 작자인 김중휴는 同面(풍산) 출신의 죽마고우이자 婚班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異姓一家’로 인식했고 더구나 같은 屛派로서의 입장을 가지고 김수근 서원 건립을 함께 주도했다. 그러나 병호보합 문제를 두고 사이가 벌어져 양인 당대에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로 발전했고, 급기야 그들의 아들 세대에서는 두 집안이 絶緣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당시 안동에서는 김수근 서원에 적극 참여한 사람들이 ‘西湖派’로 지칭되었는데, 서호서원 건립이 병호보합과 연결되면서 서호파와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병호시비보다 더 큰 갈등의 축이 되었고, 이에 서호서원 문제는 철종 6년(1855) 서원 건립 시도부터 고종 26년(1889) 하회-오미동의 절연까지 30여년간 안동지역에 일대 소란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지역정치 상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李滉의 종손인 李彙寧이 臨川書院에서 봉변을 당한 이른바 ‘臨川事變’(혹은 臨川鼓變)이다. 이 사건은 이황을 정치․문화적 가치체계의 중심축으로 놓고 道論를 결집해가던 당시 영남의 관행이 무너져 가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대신하여 특유의 인식 및 행위논리에 입각한 집합적 행위자이자 제 사회적․정치적 과정에 대처하는 적응기재로 門論이 강력하게 대두하였고, 黨論의 정체성도 가문의 전통과 사회적 입지를 유지하기 위한 가족적 정체성의 일부로 내향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사회적 변동에 따라 각 가문이 이전과 생존전략을 달리했기 때문인데, 이 글에서는 류기목과 병호보합을 주도했던 그의 아들 柳道性의 일련의 행위들을 가족전략의 측면에서 정리하였다. 본고는 남인의 근거지인 안동에 노론계가 자파의 서원을 건립하는 과정을 피상적으로 목도한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그 건립을 주도했던 사람의 생생한 증언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내막을 생생히 살필 수 있고, 나아가 타 붕당의 서원건립에 참여하면서 世誼라는 가족윤리와 붕당적 정체성 사이에서 부단히 갈등하던 작자의 意識世界와 당시 지역사회에서 붕당과 가문이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를 사실적으로 규명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울러 당시 안동사회의 문화적 가치체계, 중앙 및 지방관의 정치행위, 지역민의 의식을 지배하던 정체성 모델과 그 변동, 戊申亂과 영조대 金尙憲 서원건립을 두고 벌어졌던 과거의 향중 갈등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 한말 역사상황에서의 가족의 생존전략, 가족주의의 역사적 실태 등 많은 문제에서 차후 논의의 실마리를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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